『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지 않을 헌법상 기본권을 가진다'고 판단해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판결을 항소심 법원이 지지한 것』
사실관계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10년차 선후배 사이였는데 2017년 7월 갈등을 빚었다. 후배 교사인 B씨가 학생 문제로 동료 교사 C씨와 상의하기 위해 교무실을 찾았다가 일이 벌어졌다. B씨가 C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A씨가 B씨에게 나가라고 소리쳤고, 이에 B씨는 휴대폰으로 A씨의 음성을 녹음했다.
이를 본 A씨는 B씨의 휴대폰을 빼앗았고, 이후 B씨를 상대로 음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A씨는 재물손괴죄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판결내용
서울중앙지법 민사9-1부(재판장 강화석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이런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다만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이나 이익이 있고 비밀녹음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뤄져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다고 평가 받을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
B씨가 A씨의 동의없이 녹음을 했지만, B씨의 행위로 A씨의 음성권이 다소 침해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판단되는 만큼 B씨의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돼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A씨의 음성이 비밀리에 녹음된 부분은 약 23초에 불과하며 그 중 절반 이상은 B씨와 C씨가 대화하는 부분이고, 둘은 이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는데 A씨는 예전에도 B씨에게 고성을 질러 B씨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A씨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녹음하게 된 것으로 보여 그 필요성과 긴급성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다.
녹음된 음성은 A씨의 내밀한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B씨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는 내용 뿐이고, 발언도 공개된 장소인 교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듣는 가운데 이뤄져 A씨의 음성권 침해 정도가 미약하고 내밀한 사생활이나 비밀영역을 침해한 것도 아닌 데다가 B씨는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 제출하거나 형사사건의 수사를 위해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했다.
A씨는 녹음 내용에 A씨의 발언이 얼마 없다거나 B씨가 녹음 내용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A씨에 대한 명예훼손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정당행위로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A씨의 음성권 침해행위를 둘러싸고 원·피고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해 침해행위의 위법성을 가려야 한다.
이익형량 과정에서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 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도 고려대상이 되며,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서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 등이 있는 바,
녹음과 관련해 A씨의 발언 분량이나 내용, 녹음파일의 사용에 관한 것은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서 충분히 정당행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모 중학교 교사 A씨가 같은 학교 후배 교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8나68478)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7.10. 선고 2018나68478 판결 손해배상(기)
【원고, 항소인】 전AA,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담당변호사 최정진)
【피고, 피항소인】 신BB,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신효(담당변호사 박재용)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17. 선고 2018가소1358597 판결
【변론종결】 2019. 6. 12.
【판결선고】 2019. 7.10.
【주문】
1.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7,024,644원 및 이에 대하여 2017. 7. 12.부터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와 피고는 서울 ○○구 소재 영○중학교 교사들이다. 이 사건 당시 원고는 1학년 담당교사로, 피고는 3학년 담당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 피고는 자신이 담임을 말은 3학년 학생들의 학교 행사 참여와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자, 2017. 7. 12. 17:40경 위 행사를 주관하던 1학년 담당교사 김CC에게 전화하여 이야기하였고,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1학년 교무실로 찾아갔다. 당시 1학년 교무실에는 원고와 김CC, 박DD, 오EE이 있었다.
다. 피고가 1학년 교무실에 들어가자 원고는 피고를 향해 다소 다급한 어조로 반복하여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하였고, 피고는 이에 대응하지 않은 채 김CC의 옆자리에 앉아 김CC과 학생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화를 하였다. 원고는 계속하여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쳤고, 이에 피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원고의 음성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라. 원고는 피고가 녹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피고의 스마트폰을 빼앗았고, 스마트폰을 돌려달라는 피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까지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원고는 이와 관련하여 재물손괴죄로 기소되어 2018. 8. 14. 벌금 300,000원의 유죄판결(서울서부지방법원 2017고정1644호)을 받았고, 현재 항소심(서울서부지방법원 2018노1179호) 계속 중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9, 30호증, 을 제1~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요지
가. 원고
피고는 원고의 음성을 비밀리에 녹음함으로써 원고의 음성권을 침해하였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불법행위로 원고가 입은 손해 7,024,644원(= 치료비 5,024,644원 + 위자료 2,000,000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피고
음성권이 구체화된 권리로 인정되는지 불분명하며, 음성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법익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즉 피고가 원고의 불법행위를 제지하거나 회피할 목적으로 녹음을 하는 경우까지 원고의 음성권이 그 보호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설령 원고의 음성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녹음 경위, 원·피고 사이의 관계, 녹음내용 등에 비추어 피고의 녹음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
3. 판단
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녹음자의 비밀녹음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
나. 피고가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의 음성을 녹음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 나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녹음행위로 원고의 음성권이 다소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판단된다. 따라서 피고의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① 피고는 김CC과 대화하던 중 원고가 계속하여 대화에 끼어들며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치자 녹음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원고의 음성이 비밀리에 녹음된 부분은 약 23초에 불과하며, 그중 절반 이상은 피고와 김CC이 대화하는 부분이다.
② 피고는 이 사건 이전부터 원고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고, 종전에도 원고가 피고에게 고성을 지르는 일이 있어 원고에 대하여 피해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건 당시 원고가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며 계속하여 소리치자, 원고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녹음을 하게 된 것으로 보여 그 필요성 및 긴급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③ 녹음된 원고의 음성은 원고의 내밀한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는 취지의 내용뿐이고, 그 발언도 공개된 장소인 교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는바, 원고의 음성권 침해 정도가 미약하고, 원고의 내밀한 사생활이나 비밀영역을 침해한 것도 아니다.
④ 피고는 녹음파일 및 녹취록을 이 사건 소송과 관련하여 법원에 제출하거나 형사사건의 수사를 위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하였다.
⑤ 원고는, 이 사건 녹음 내용에 원고의 발언이 얼마 없다거나 피고가 녹음내용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원고에 대한 명예훼손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을 정당행위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의 음성권 침해 행위를 둘러싸고 원고와 피고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하여 침해행위의 위법성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이익형량과정에서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 외에도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도 고려대상이 되며,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서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및 침해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 등이 있는바, 이 사건 녹음과 관련하여 원고의 발언 분량, 발언 내용, 녹음파일 및 녹취록의 사용에 관한 것은 피해 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서 충분히 정당행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