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교통사고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사고가 경미하고 가족에게 사건처리를 맡겼다면 뺑소니로 볼 수 없다.
사실관계
차씨는 자신의 옵티마 승용차를 운전해 서울 면목동 도로를 주행하다 유씨가 운전하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유씨는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요추염좌 상해를 입었고, 옆좌석에 탑승했던 승객은 피해가 없었다. 유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 차씨는 인근 자택에 있던 처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처리를 맡기고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가 기소됐다.
1,2심은 차씨가 정당한 이유 없이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내용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유씨의 상해가 비교적 경미하고 차씨가 현장을 이탈하면서 자신의 처에게 사고처리를 맡겨 차씨의 처가 곧바로 사건현장에 도착한 점, 차씨가 비교적 단시간 내에 경찰서로 출두해 운전사실을 시인한 점 등을 고려하면 차씨가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고 도주의 범의로 사고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교통사고를 낸 뒤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차모씨에 대한 상고심(대법원 2012도9663)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012. 10. 25. 선고 2012도9663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
【피고인】
A
【상고인】
피고인
【원심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2. 7. 19. 선고 2012노546 판결
【판결선고】
2012. 10. 25.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제1항에서 정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란, 사고 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경우 운전자가 취하여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것으로서,
여기에는 피해자나 경찰관 등 교통사고와 관계있는 사람에게 사고운전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나, 다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제1항의 규정이 자동차와 교통사고의 격증에 상응하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교통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현실에서 자신의 과실로 교통사고를 야기한 운전자가 그 사고로 사상을 당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하는 행위에 강한 윤리적 비난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하여 이를 가중처벌함으로써 교통의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함과 아올러 교통사고로 사상을 당한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라는 그 입법취지와 보호법익에 비추어, 사고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정한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도주의 범의로써 사고현장을 이탈한 것인지 여부를 판정함에 있어서는 그 사고의 경위와 내용, 피해자의 상해의 부위와 정도, 사고 운전자의 과실 정도, 사고 운전자와 피해자의 나이와 성별, 사고 후의 정황 동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8627 판결, 대법원 2012. 7. 12. 선고 2012도1474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제1심의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인은 사고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고, 사고 직후 피해택시 운전기사 D에게 보험회사에 사고접수만 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고 하였으나 D이 피해택시가 회사차량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자, D이나 피해택시 승객 H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사고현장을 벗어났으며, 피고인이 사고현장을 벗어난 후 10분 정도 지나 피고인의 배우자가 사고현장에 도착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차를 운전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① 피고인이 차로상에 정차하고 있던 피해차량의 뒷 범퍼 부분을 피고인의 승용차 앞 범퍼 부분으로 들이 받아 택시 운전자인 피해자 D(56세)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추염좌 및 요추염좌의 상해를 가하였으나, 위 사고로 인하여 피해차량의 범퍼 부근에 수리비 681,054원 가량의 손괴가 있었지만 현장에 비산물 등은 없었고, 피해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던 승객 H은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아니한 사실,
② 피고인은 사고 직후 차량을 정차하여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피해자가 특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즉시 병원에 가겠다고 하는 등 구호조치를 요청하지 않았고, 단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보험에 들어 있으니 신고를 하지 말고 합의하자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회사차량임을 이유로 사고신고를 하겠다고 말한 사실,
③ 피해자가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보고 피고인은 자신의 승용차에 불을 켜고 시동을 걸어 놓은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사실,
④ 피고인이 현장을 이탈하면서 인근 피고인의 집에 있던 피고인의 처에게 연락하여 현장에 가보게 하여 피고인이 현장을 이탈한지 약 7-8분 후에 피고인의 처가 현장에 도착한 사실,
⑤ 피해자와 피고인의 처가 경찰서에 도착하여 피고인에게 전화로 연락하였고, 피고인은 사고 후 20분쯤 후이자 피해자 등이 경찰서에 도착한지 10 분쯤 후에 경찰서에 도착한 사실,
⑥ 피고인은 경찰서에서 자신의 운전사실을 바로 인정하였고, 사고 당시 약간의 술을 마신 상태였으나 음주측정 결과 음주단속 수치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사실 등이 인정된다.
위와 같이 이 사건 사고의 내용이 그다지 중하지 않고 피해자의 상해가 비교적 경미해 보이는 점, 사고 직후 피고인이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와 대화를 나눈 점, 피해자가 피고인과 사고처리 방안을 논의하였을 뿐 특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구호가 필요한 언동을 하지 않았던 점, 피고인은 피해자가 경찰을 부르자 현장을 이탈하면서 자신의 처에게 사고처리를 맡겨 자신의 처가 곧바로 사건현장에 도착한 점, 피고인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경찰서로 출두하여 운전사실을 시인한 점, 피고인이 음주운전에 해당하지 않는 소량의 술을 마셨을 뿐인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당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도주의 범의로써 사고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차량)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인의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