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던 아내를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어 숨지게 한 60대 남편이 징역 5년을 선고
사실관계
A씨 아내 B씨는 2019년 5월 29일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B씨는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라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만 의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A씨는 B씨가 쓰러진 지 6일 만인 2019년 6월 4일 B씨의 기도에 삽관된 인공호흡장치를 손으로 뽑아 저산소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아내와 서로 연명치료를 하지 말자고 했고, 자식들에게도 알렸다고 주장했다.
판결내용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박재우 부장판사)는 별다른 재산 없이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A씨 입장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을 경우 발생하는 하루 20~30만원의 비용이 경제적 부담으로 느껴졌을 수 있어 범행 동기에 어느 정도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가장 존엄한 가치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인할 수 없다.
국회는 2016년 연명의료와 연명의료중단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해 2018년 8월부터 시행 중이라며 B씨가 회복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오랜 기간 동안 고통받아온 것도 아니고, 당시 B씨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쓰러져 회복이 어려운 혼수상태에 이르렀는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연명의료결정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A씨가 6일 만에 B씨를 살해한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서울고등법원 2020노159)했다.
서울고등법원 2021. 4. 7. 선고 2020노159 판결 살인
【사건】 (춘천)2020노159 살인
【피고인】 (6*-5)
【항소인】
【검사】
【변호인】
【원심판결】 춘천지방법원 2020. 9. 10. 선고 2019고합105 판결
【판결선고】 2021. 4. 7.
【주문】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원심의 형(징역 5년)은 너무 무겁거나(피고인), 너무 가벼워서(검사) 부당하다.
2. 판단
가. 피고인은 배우자인 피해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피해자를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병명 및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을 거듭하였음에도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의료비 부담이 가중될 것을 걱정하여 인공호흡기의 기도 내 삽관을 제거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나.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는 혼수상태로 의식이 없고 자발 호흡을 하지 못하여 인공호흡기를 통한 연명의료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별다른 재산이 없이 피해자와 함께 ○○○○병원에서 노인과 중환자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계속 연명의료를 받는 경우 하루 20만~3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하여 경제적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로 피해자가 2019. 5. 29. 오후경 갑자기 쓰러졌을 때부터 피고인이 2019. 6. 4. 오전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약 250만 원의 치료비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동기에 어느 정도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 나아가 피해자의 자녀 및 유족들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
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생명은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가장 존엄한 가치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인할 수 없다.
과거 의학적으로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환자에 대하여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인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지 아니하였던 결과, 환자의 가족으로서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환자를 살해하는 것 외에는 계속된 연명의료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헤어날 방법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민사적·형사적으로 중대한 법적 쟁점이 되기에 이르자 대법원은 2009. 5. 21. 전원합의체 판결(2009다17417호)을 선고함으로써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 요건과 그 판단기준을 선언하였고, 이후 약 7년에 가까운 논의를 거쳐 국회는 2016. 2. 3. 연명의료와 연명의료중단등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으며, 위 법 중 연명의료중단등결정에 관한 제9조 내지 제20조의 규정은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8. 8. 4.부터 시행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즉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에 관하여 그 대상, 판단의 절차 및 기준, 결정의 구체적인 이행방법 및 기록의 보존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연명의료결정법의 규정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환자의 생명을 둘러싼 근본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에 관하여 결단을 내리고 이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 법을 무시하고 환자를 살해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범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자칫 환자의 생명을 마음대로 박탈하는 풍조를 만연시킬 수 있어 이를 과거 아무런 법적 절차가 마련되지 아니하였던 때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라. 피고인이 2019. 5. 31. ●●●●병원으로 피해자를 전원한 다음날인 2019. 6. 1. 기도 내 삽관의 제거를 요구하자 의료진은 승압제를 처치하지 아니하고도 피해자의 심박동이 유지되고 있고 혈압이 매우 낮기는 하나 80/50~50/30으로 유지되고 있어 불가능함을 설명하였고, 2019. 6. 3. 피고인에게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결정에 관한 절차가 확립되어 있는 ■■의료원으로의 전원을 제안하여 2019. 6. 4. 오전 ■■의료원 전원을 위한 소견서 작성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그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같은 날 09:30경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가 회복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받아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 사건 범행 당시에는 피해자가 어떠한 이유로 갑자기 쓰러져 회복이 어려운 혼수상태에 이르러 연명의료에 의존하게 되었는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아니한 상황이었으므로 연명의료결정법의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쓰러진지 6일 만에 피해자를 살해한 피고인의 범행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마. 피고인은 피해자의 기도 내 삽관을 충동적으로 제거한 뒤 별다른 저항 없이 중환자실에서 퇴실하였는데도 의료진이 다시 피해자에게 삽관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피해자의 사망에는 의료진의 책임도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원심과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더라도 의료진에게 어떠한 과실이 있었는지 명확하지 아니하고, 만의 하나 피고인의 범행 이후 의료진의 대처에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피고인의 죄책에 영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바. 나아가 원심은 피고인의 희망에 따라 이 사건을 국민참여재판 절차로 진행하였고, 배심원 중 다수의 양형의견(징역 5년: 5명, 징역 4년: 3명, 징역 3년 및 집행유예 5년: 1명)을 존중하여 형을 정하였다. 위와 같은 배심원들 다수의 양형의견은 일반 국민의 상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 그 타당성을 수긍할 수 있다.
사. 위와 같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정상, 그 밖에 원심이 선고한 형은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량 범위 내의 것으로 이 법원에서 형을 달리할 사정변경이 없는 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 및 결과, 범행 이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 과정에 나타난 여러 양형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보이지 아니한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모두 기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