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조치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경미한 교통사고라면 가해자가 인적사항 제공 등 조치 취하지 않고 사고 장소 떠나도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요지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더라도 그 정도가 경미해 구호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고 장소를 떠났더라도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실관계
A씨는 2019년 11월 무면허 음주상태로 차를 몰다 B씨가 운전하는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B씨와 동승자 C씨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고, 피해 차량은 12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발생했다.
검찰은 A씨가 무면허 음주상태에서 사고를 내고도 B씨 등을 구호하지 않고 인적사항도 제공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며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A씨가 경미한 상해를 입은 B씨를 구호하는 등 관련 조치를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떠난 것이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은 '교통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 가중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은 사고 당시 피해자의 충격이 크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사고 이후 물리치료 또는 약물치료 외에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고로 피해자들이 구호 등 조치가 필요한 정도의 상해를 입었음에도 A씨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도주치상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A씨가 사고로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피해자들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채 사고 장소를 이탈했다면 구호조치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양형에서는 1심과 같이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내용
대법원 형사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사고의 경위와 내용, 피해자의 나이와 상해의 부위 및 정도, 사고 뒤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 때에는 사고운전자가 피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사고 장소를 떠났다고 하더라도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A씨의 도주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대법원 2020도15208)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021. 2. 10. 선고 2020도15208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1.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특정범죄가중법'이라 한다) 위반(도주치상)죄의 성립요건에 관하여
가. 이 사건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도주치상)죄의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G 포터Ⅱ 트럭을 운전하여 여수시 돌산로에 있는 금성보건진료소 앞 삼거리를 진행하면서, 전방 및 좌측을 소홀히 살핀 과실로 전방 맞은편 도로에서 교차로를 진행하던 피해자 H(60세)가 운전하는 I 싼타페 승용차를 충격하여(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피해자 H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요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동승자인 피해자 J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각 입게 하였음에도 곧바로 정차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도주하였다."라는 것이다.
나. 원심은, 인적 피해를 야기한 사고운전자는 2016. 12. 2. 법률 제14356호로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데,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로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피해자들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채 사고 장소를 이탈하였다면 구호조치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1항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1항은 자동차와 교통사고의 격증에 상응하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교통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현실에서 자신의 과실로 교통사고를 야기한 운전자가 그 사고로 사상을 당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하는 행위에 강한 윤리적 비난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하여 이를 가중처벌함으로써 교통의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함과 아울러 교통사고로 사상을 당한 피해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규정이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2도2001 판결, 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3도15885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사고의 경위와 내용, 피해자의 나이와 상해의 부위 및 정도, 사고 뒤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때에는 사고운전자가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는 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사고 장소를 떠났다고 하더라도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1항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라.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하지 않은 채, 피고인이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제2호가 정한 '인적 사항 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사고 장소를 이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1항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마. 이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3 제1항 위반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구호조치의 필요성 유무에 관하여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증거조사 관련 절차위반 주장에 관하여
가. 형사소송법 제291조 제1항은 "소송관계인이 증거로 제출한 서류나 물건 또는 제272조, 제273조의 규정에 의하여 작성 또는 송부된 서류는 검사,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개별적으로 지시설명하여 조사하여야 한다.", 제292조 제1항은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 제292조 제3항은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93조는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각 증거조사의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고 권리를 보호함에 필요한 증거조사를 신청할 수 있음을 고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절차에 따른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은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어 이를 사실인정의 자료로 삼을 수 없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8도2344 판결 등 참조).
나. 기록에 의하면, 제1심법원의 의사 K, L, 한의사 M에 대한 각 사실조회회신은 공판정에서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바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어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위 각 사실조회회신을 제외하고 제1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나머지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이 사건 사고로 상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잘못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3. 파기의 범위
이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도주치상)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파기부분은 유죄가 인정된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죄 부분과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고, 나머지 유죄 부분과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되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 전부가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