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과 2심이 공통으로 인정한 사실관계를 보면, 사망한 여자친구 윤모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코와 입이 막혀 질식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윤씨가 질식사했다면 고통으로 몸부림친 흔적이 남았어야 했는데 이 점을 두고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이규 부장판사)는 윤씨가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고 상정하기보다는 몸부림을 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윤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코와 입을 막는 등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김씨의 유형력 행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심폐기능 정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2012고합325).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윤씨가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김씨가 윤씨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케 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2012노3561). 즉, 윤씨가 몸부림칠 수 없었던 상황을 추론하기보다는 그런 상황이 증명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살인죄도 직접증거가 없을 때는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간접증거로 인정되는 사실들 사이에 모순이 없고 그렇게 추론한 방법이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관계
A씨는 2010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여자친구 B씨를 질식시켜 숨지게 한 뒤 B씨가 낙지를 먹다 숨졌다고 속여 사망 보험금 2억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지난해 4월 기소됐다. 1심 재판을 맡은 인천지법은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판결내용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검사의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혐의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어 살인 혐의와 살인을 전제로 하는 보험금 편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이어 코와 입을 막아 살해했을 경우 본능적인 저항으로 얼굴 등에 상처가 남지만, 법의학자와 전문가의 증거조사 결과 당시 건강한 20대 여성이었던 피해자 몸에 흔적이 있었다거나 저항조차 못할 정도로 의식이 없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피해자 사망 당시 각종 조사나 검사, 부검이 이뤄졌으면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었는데, 당시 경찰은 타살 의혹이 없다고 보고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피고인 진술 외에는 사망 원인을 밝힐 아무런 증거가 없고 피고인의 진술처럼 낙지로 인해 질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A씨가 승용차에 있던 현금 등을 훔친 일부 절도와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충분하고 자백했다며 전과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A(32)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12노3561). 다만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또한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3도4381 판결에서는 김씨의 신속한 구호조치 때문에 심장박동이 회복되었다는 2심의 주장을 단정할 수 없다고 배척했지만 무죄 결론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3도4381 판결 [살인,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절도(일부 인정된 죄명 : 권리행사방해), 권리행사방해]
【피고인】 A
【상고인】 검사
【변호인】 변호사 B, BP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 4. 5. 선고 2012노3561 판결
【판결선고】 2013. 9. 12.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살인 및 사기의 점에 관하여
가.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법관에게 주는 증명력 있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증명 정도가 위와 같은 확신을 충분히 주기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등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편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로만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이러한 방식에 의한 유죄 인정을 위해서는 공소사실과 관련이 깊은 간접증거에 대하여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므로, 간접증거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을 인정할 때에는 그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며, 간접사실 하나하나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간접사실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 과학법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1902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제1심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F(이하 '피해자'라고 한다)의 사망 원인을 질식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1) 법의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질식의 원인은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기도폐색, 코와 입이 강제로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비구폐색, 목이 조이거나 눌려 숨을 쉬지 못하는 경부압박이 있다.
2) 그런데 피해자가 경부압박으로 질식하였다는 증거는 없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낙지를 입에 넣었다가 숨이 막힌 것이라고 주장하므로, 질식의 원인이 피고인과 무관한 기도폐색인지, 아니면 당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인의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비구폐색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3) 이에 관한 법의학적 의견을 종합하면, 비구폐색에 의한 질식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얼굴 등에 상처 등의 흔적이 있다는 점 및 그러한 흔적이 없을 경우 피해자가 본능적인 생존의지조차 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잃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4) 그러나 위와 같은 흔적이 발견된 바 없으며, 피해자가 술을 마신 것만으로 당시 본능적인 생존의지조차 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5)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는 피해자가 무심코 입에 넣을 경우 충분히 들어갈수 있어 보이고, 당시 피해자가 낙지를 먹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피고인의 변명처럼 피고인이 손가락으로 낙지 때문에 질식 상태가 된 피해자의 입안에서 낙지를 꺼냈거나 피해자가 뱉어내었을 가능성도 있다.
6) 그 밖에 검사가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의 범행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피해자를 피보험자로, 피고인을 수익자로 한 보험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험료 및 보험금의 액수 등에 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 점, 질식이 일어난 경우 8분에서 10분 정도가 경과하면 심장 박동이 회복되지 않는데 피해자가 심장 박동을 회복한 것은 피고인이 신속한 구호조치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오히려 유죄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존재한다.
다. 기록에 의하면, 심장 박동의 회복 가능 여부는 질식이 시작된 때로부터 흐른 시간에 반드시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견해임을 알 수 있으므로, 원심의 이유설시 중 위와 같이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유만으로 피고인이 신속한 구호조치를 하였다고 단정한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해자가 비구폐색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하였다는 점에 관한 명백한 증명이 없고, 피고인의 행위와 무관하게 낙지에 의한 기도폐색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으며, 검사가 제시한 간접증거만으로는 그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결국 이 부분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줄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2.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의 점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없다.
3. 나머지 점에 관하여
검사는 원심판결 중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도 상고하였으나, 상고장에 이유의 기재가 없고, 상고이유서에도 이에 대한 불복이유의 기재를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