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가 경과실로 인한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면, 국가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실관계
충남 서천군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서씨는 2005년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가 사망한 후, 유족이 "서씨가 패혈성 증후군을 진단한 후 혈액배양검사를 시행해 원인균을 밝혀내야 함에도 하지 않고, 3세대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 등 의료사고에 의한 사망"이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2010년 유족에게 3억2700여만원을 배상했다.
이후 서씨는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는 공무원으로 의료상 과실이 경과실에 해당해 국가가 이를 지급해야 한다며 2010년 12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고의, 중과실이 인정된다면 책임의 주체는 공무원에 해당해 구상권이 발생하지 않고, 경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서씨가 자신의 채무를 변제한 것에 불과하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판결내용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최완주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공무원이 직무상 경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직무 수행에서 통상 예상할 수 있는 흠이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공무원의 행위는 여전히 국가 등 기관의 행위로 봐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책임도 전적으로 국가 등에만 귀속하게 해 공무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배상법의 취지라고 밝혔다.
서씨가 공중보건의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유족은 국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채권을 가진다. 서씨가 의료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면 국가에 대해 구상권을 갖게 된다고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서모(37)씨가 국가 대신 지급한 배상금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1나9637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국가는 3억27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2012. 6. 7., 선고, 2011나96378, 판결 구상금
【원고, 항소인】
【피고, 피항소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나눔 담당변호사 임영근)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0. 12. 선고 2010가합123054 판결
【변론종결】2012. 4. 26.
【주 문】
1.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327,181,803원과 이에 대하여 2010. 11. 23.부터 2012. 6. 7.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 중 금전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주위적 및 예비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327,181,803원과 이에 대하여 2010. 11. 23.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원고는 당심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추가하였다).
【이 유】
1. 기초사실
이 법원에서 이 부분에 관하여 설시할 이유는, 제1심 판결 이유 부분 제2면 14행의 “2006. 1. 26.”을 “2007. 11. 5.”로 고치고, 제3면 21행 끝부분에 “(이하 ‘선행사건’이라고 한다)”를 추가하는 것 이외에는 제1심 판결의 이유 제1항 기재와 같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2. 판단
가. 당사자의 주장
(1) 원고의 주장
(가) 주위적 청구
공무원이 직무수행 중 경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공무원 개인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바, 원고는 망인에 대한 의료행위를 할 당시 공중보건의사로서 계약직 공무원의 지위에 있었고, 원고의 의료상 과실이 고의나 이에 가까운 정도로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위 법리에 따라 원고는 망인의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피고만이 그 배상책임을 진다.
그럼에도 망인의 유족들이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선행사건에서 금전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았고, 이에 의하여 강제집행을 받게 될 지위에 처하게 됨에 따라 망인의 유족들에게 선행사건의 판결에서 지급을 명한 돈을 지급하였다. 원고는 민법 제481조의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에 해당하므로 위와 같이 망인의 유족들에게 지급한 금액에 관하여 망인의 유족들이 피고에 대하여 갖는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여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는 망인의 유족들에게 부담하는 손해배상채무를 원고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나) 예비적 청구
원고가 변제자로서 망인의 유족들의 피고에 대한 권리를 대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피고는 망인의 유족들에 대한 채무가 소멸하는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을 얻었으므로 원고에게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
(2) 피고의 주장
(가) 선행사건에서 공무원인 원고에게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된 점, 망인이 패혈성 증후군에 해당한다는 검사결과가 나왔음에도 원고가 혈액배양검사를 하지 아니하였고, 3세대 항생제로 교체 처방하지 아니한 것은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것에 해당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망인을 치료함에 있어 저지른 의료상 과실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
(나) 원고에게 경과실만 있었음에도 선행사건에서 공무원이라는 주장을 하지 아니함에 따라 원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은 것이라면, 위 판결은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것일 뿐,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기한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므로 원고는 국가의 채무가 아닌 자신의 채무를 변제한 것에 지나지 아니한다. 원고가 위 판결에 따른 돈을 망인의 상속인들에게 변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로써 국가의 채무를 변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상, 망인의 유족들의 권리를 대위할 수 없고, 이로써 국가가 이익을 얻은 바 없으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도 없다.
(다) 원고는 2005. 11. 11.까지 망인을 치료하였고, 망인의 유족들은 2006. 1. 26. 선행사건의 소를 제기하였는바, 망인의 유족들은 적어도 위 소 제기시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그로부터 3년이 도과한 2009. 1. 26.에는 피고의 채무가 시효소멸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망인이 사망한 2005. 12. 23.로부터 현재까지 5년의 시효기간이 이미 도과한 이상 망인의 유족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은 이미 시효소멸하였다.
(라) 원고가 선행사건에서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지 아니하여 원고의 의료상의 잘못이 경과실인지 중과실인지를 판단받지 못한 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확정판결을 받게 되었는바, 막연히 원고에게 중과실이 없었다면 면책받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만을 근거로 이를 피고의 채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과 자기모순금지에 반하는 것이다.
나. 구상권의 발생 여부
(1) 검토할 사항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라고 하더라도 채무의 성질상 허용되지 아니하거나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타인의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바(민법 제469조), 이 경우 변제한 제3자는 채무소멸의 이익을 얻은 채무자를 상대로 구상할 수 있다.
이 경우 변제자가 취득하는 구상권의 발생근거는, 변제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의사로 한 경우에는 민법 제739조의 사무관리비용의 상환청구권이고, 이 사건처럼 변제자가 착오에 기하여 변제하는 등 그 외의 경우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다(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구상권의 발생근거가 됨은 대법원 2005. 8. 19. 선고 2003다36904 판결에서 이미 인정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이 사건과 같은 사실관계에서는 민법 제745조 제2항을 구상권의 발생근거 규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조항은 새로운 구상권 발생근거를 법정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 기한 구상권의 발생을 확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이 경우에도 역시 그 근거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된다고 봄이 옳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변제한 채무가 성질상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거나 피고의 의사가 이에 반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변제한 것이 피고의 채무를 변제한 것에 해당한다면,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구상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변제한 채무가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이라거나 원고에게 중과실이 있는 경우로서 원고도 국가배상채무를 지는 경우라서 원고가 변제한 것은 원고 자신의 채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2)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에 기한 원고 자신의 채무인지 여부
공무원의 직무수행 중 발생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국가배상법 제1조, 제2조의 배상책임이고, 이 경우 특별법인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므로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의 적용은 배제된다(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다19833 판결 참조).
공무원이 직무상 경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직무수행상 통상 예기할 수 있는 흠이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공무원의 행위는 여전히 국가 등의 기관의 행위로 보아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도 전적으로 국가 등에만 귀속시키고 공무원 개인에게는 그로 인한 책임을 부담시키기 아니하여 공무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과 제2항의 입법취지인데(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 경우 손해를 입은 자가 공무원 개인에게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것이 차단되지 아니한다면 결국 위 입법취지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와 같이 보는 것이 옳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는 구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2007. 4. 6. 법률 제83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하여 국가공무원(계약직공무원)의 신분을 갖고(제3조), 보건복지부장관의 종사명령에 따라 군지역 또는 의사확보가 어려운 중소도시의 민간병원 중 정부의 지원을 받는 병원(제5조의2 제1항 제5호, 시행령 제6조의2 제2호)에 해당하는 ○○○병원에서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였다. 그러므로 공무원인 원고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직무를 수행하던 중 환자 등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국가배상법에 기한 책임만이 문제될 뿐,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은 문제되지 아니한다.
갑 제1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망인의 유족들이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원고에게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 판결의 효력은 그 당사자가 아닌 피고에게는 미치지 아니하고, 피고가 구상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는 원고의 변제로 피고의 채무가 소멸하였는지 여부에 따르게 될 뿐이므로 이 사건에서 원고의 변제로 망인의 유족들에 대한 피고의 국가배상채무가 소멸되었다면 구상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지, 원고가 받은 판결에서 인정한 청구원인이 피고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것이었는지 여부에 따라 구상의무의 존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대출계약에서의 형식상의 주채무자가 주채무자로서 대출금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은 후 실질상의 주채무자에게 구상하는 경우나 비현명대리인이 본인으로서 채무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은 후 실제의 본인에게 구상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면 위 결론이 옳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배상한 채무는, 위 판결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국가배상채무라고 보아야 할 것인바, 원고에게 고의, 중과실이 있어 이를 원고도 부담하고 있었는지, 원고에게 경과실만 있어 피고만 부담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3) 원고에게 고의, 중과실이 인정되는지 여부
공무원 개인이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요건인 공무원의 중과실이라 함은 공무원에게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다13307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 선행사건의 제1심 판결에서 원고의 의료상 과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 원고에게 중과실이 있다는 판단에 기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위 사건에서는 원고가 공무원이고, 원고가 망인을 치료한 행위가 공무수행에 해당한다는 점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 입증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에 따라 원고에게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므로(갑 제1호증) 원고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 원고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어 공무원 개인인 원고도 국가배상책임을 지게 된다는 판단을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 갑 제9호증, 을 제1호증의 2, 제2호증의 각 기재와 제1심 법원의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에 의하면, 망인과 같이 고열이 발생하고, 적혈구침강속도, C반응성단백 등 염증수치가 높게 상승하며, 백혈구 수치와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저하되는 경우 패혈성 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으므로 혈액과 감염이 의심되는 신체부의의 체액을 배양검사하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람 양성균과 음성균 모두에게 효과적인 3세대 항생제를 미리 투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치료원칙이라는 사실,
그럼에도 원고는 패혈성 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었을 2005. 11. 9.경 망인에게 전원할 것을 권유하였을 뿐, 혈액배양검사를 실시하지도 아니하였고, 3세대 항생제로 교체 처방한 사실도 없음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의하면 원고가 망인을 치료함에 있어 의료상 과실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한편, 망인에게 나타난 증상들은 감염성 질환 뿐만 아니라, 비감염성 염증 질환, 심근경색, 외상, 출혈, 화상 등의 경우에도 나타나는 증상이라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정만으로 패혈성 증후군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갑 제9호증, 을 제2호증),
원고는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감염질환에 대한 대처를 그 분야의 전공의와 같은 정도로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는데, 원고가 2005. 11. 9. 오전부터 수차례 망인의 가족들에게 전원을 권유하였음에도 망인의 가족들이 이를 미루다가 의식저하가 나타난 같은 달 11.에야 △△의료원으로 전원한 점(갑 제5호증의 3),
2005. 11. 9.부터 같은 달 11.까지 망인의 수술 부위 동통이 더 심해지지 아니하였고, 발열 외에는 다른 생체징후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급격한 상태악화를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위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원고의 혈액배양검사 미실시와 3세대 항생제 미처방의 과실이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음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주의결여상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가 망인을 치료함에 있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망인과 망인의 유족들이 갖는 손해배상채권은 피고에 대한 국가배상채권뿐이었다고 보아야 하는바, 이를 원고가 변제하여 피고의 채무를 소멸시켰으므로 원고는 피고에게 구상권을 갖게 된다.
(4) 구상권의 범위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였을 경우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그러한 직무상의 의무 위반과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배상책임을 지므로(대법원 2011. 9. 8. 선고 2011다34521 판결 참조) 원고의 구상권은 망인의 유족들에게 배상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그 중 피고의 손해배상채무를 소멸시킨 금액에 관하여만 발생한다.
갑 제3호증의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배상한 금액은 판결에 기한 원리금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원고가 선행사건에 응소함에 있어 책임의 범위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 입증을 누락하여 그 판결금이 증가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갑 제10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선행사건이 항소심에 계속되어 있을 때 원고가 피고에게 소송고지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참가적 효력이 미치게 되는 피고로서는 선행사건의 판결에서 인정한 손해의 범위에 관하여는 다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원고는 망인의 유족들에게 지급한 전액에 관하여 피고에게 구상할 수 있다.
다. 변제자대위의 가부와 그 범위
원고가 피고에 대한 구상권을 취득하게 됨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이와 아울러 피고가 법정대위의 요건까지 갖추었다면, 원고는 다른 절차 없이 피고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망인과 망인의 유족들의 피고에 대한 원채권을 대위행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 원고는 그 중 원채권을 대위하여 행사한다고 주장하므로 대위의 가부를 살펴본다.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은 변제로 당연히 구상권의 범위 내에서 채권자를 대위하게 되는바(민법 제481조, 제482조 제1항), 위 조항의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란 변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로부터 집행을 받게 되거나 또는 채무자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잃게 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제함으로써 당연히 대위의 보호를 받아야 할 법률상 이익을 가지는 자를 의미한다(대법원 2009. 5. 28.자 2008마109 결정 참조).
이 사건의 경우 갑 제1호증, 제2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원고는 망인의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금전지급을 명하는 확정판결을 받았고, 이에 따라 그 판결금을 변제하지 아니하면 채권자인 망인의 유족들로부터 강제집행을 받을 상황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위 국가배상채무를 배상할 당시에는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에 해당하였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원고는 다른 절차 없이 망인의 유족들에 대한 변제만으로 망인의 유족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을 대위행사할 수 있다.
라. 피고의 항변에 관한 판단
(1) 소멸시효의 항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의 국가배상청구권에는 국가배상법 제8조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적용되므로, 국가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고, 여기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공무원의 직무집행상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로 인한 손해의 발생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한다(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 망인의 유족들이 2007. 11. 5. 원고를 상대로 선행사건의 소를 제기한 사실은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은데, 망인의 유족들이 피고를 상대로 국가배상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원고를 상대로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를 제기한 점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유족들은 위 소를 제기할 당시에 피고에게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정을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달리 이 사건 소 제기일로부터 3년 전에 망인의 유족들이 피고에게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
그리고 망인이 2005. 12. 23. 사망하였음은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은데, 원고가 망인의 유족들에게 피고의 채무를 변제한 후 망인의 유족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을 대위행사한다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한 날이 2010. 12. 1.임은 기록상 분명하고, 이는 손해발생일로부터 5년이 도과하지 아니한 날임은 역수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은 모두 이유 없다.
(2) 신의칙 또는 자기모순금지원칙 위반
원고가 선행사건에서 공무원이라는 주장을 한 바 없어 금전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기는 하였으나, 원고에게 중과실이 있는지 여부가 반드시 그 사건에서 가려야 하는 것은 아닌 점, 이 사건에서 원고의 중과실이 인정되면 피고에 대한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선행사건에서 중과실 여부의 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피고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생겼다고 볼 수 없는 점, 원고가 선행사건에서 고의로 공무원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는 점, 원고가 피고에게 소송고지까지 한 이상 피고가 선행사건에 참가하여 필요한 주장, 입증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 또는 자기모순금지원칙에 위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의 이 부분 항변 역시 이유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는 원고에게, 원고가 대위행사하는 망인의 유족들의 국가배상채권 327,181,803원과 이에 대하여 변제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2010. 11. 23.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와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채무자가 이행의무의 존부와 범위를 다투어 제1심에서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비록 항소심에서 그 주장이 배척되더라도 그 주장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2항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시까지는 같은 조 제1항에서 정한 지연손해금 이율을 적용할 수 없다(대법원 2010. 7. 8. 선고 2010다21696 판결 참조)]
당심 판결 선고일인 2012. 6. 7.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주위적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이다. 그런데 제1심 판결의 원고 패소부분 중 이와 결론을 달리한 부분은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이를 취소하고, 피고에 대하여 위 인정금액의 지급을 명하며, 제1심 판결 중 나머지 부분은 정당하므로 이에 대한 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