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던 수감자가 구치소에서 자살했더라도 구치소 공무원이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사실관계
마약을 하다 체포된 김씨는 울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지난해 2월 27일 구치소 의료수용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개월 뒤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결국 사망했다. 그러자 김씨의 유가족들이 구치소 공무원들을 상대로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유가족은 "김씨가 수감될 때, 구치소에 김씨의 우울증 병력을 알리며 주의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교정 공무원이 업무를 소홀히 해 자살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판결내용
울산지법 민사3부(재판장 도진기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숨진 김씨가 경찰서에 유치된 동안 일과 중에는 동료와 바둑을 두기도 하는 등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해 자살을 예측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구치소 공무원들이 김씨가 기존에 복용하던 약을 전하려고 했으나 김씨가 이를 거부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김씨의 자살에 구치소 공무원들의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구치소 공무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김씨가 자살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과실로 막지 못했거나 정신질환을 악화시킨 과실이 있어야 한다. 자살 기도 당일 교정공무원이 10~20분 간격으로 시찰한 점 등을 보면 업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구치소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사망한 수감자 김씨의 유족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울산지방법원 2012가합1548)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울산지방법원 2013. 3. 20. 선고 2012가합1548 판결 손해배상(기)
【원고】 겸 망 A의 소송수계인 B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인철
【피 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권재진
소송수행자 박아인, 이호욱, 조규련,
【변 론 종 결】 2013. 3. 6.
【판 결 선 고】 2013. 3. 20.
【주 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 구 취 지】
피고는 원고에게 200,000,000원 및 2012. 2. 27.부터 이 사건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망인은 2012. 2. 27. 03:30경 E구치소 의료수용실 내에서 창틀에 수건(길이 104cm, 너비 19cm)을 걸고 그 수건에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하였고, 같은 날 03:30경 교위 C에 의해 발견되어 응급조치를 받은 후 03:36 F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망인은 2012. 4. 30. G병원으로 전원하여 치료를 받다가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이던 2012. 6. 8. 05:20경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하였다.
다. 원고의 신분관계 및 소송수계
원고는 망인의 어머니이고, 망인의 이 사건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4, 5, 9호증, 을 제5호증의 1, 제6호증의 2~8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우울증 병력이 있는 사람으로 D경찰서 유치장에서 가족들에게 자살에 대한 암시를 하였고 이에 망인의 가족들이 그 경찰서 경무과 유치관리계 경찰공무원에게 망인이 자살기도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음에도 그 경찰공무원은 망인의 신병을 E구치소로 인도할 때 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에게 망인의 자살기도 가능성에 대하여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E구치소에서 망인을 인수할 당시 망인은 우울증을 앓고 있어 수용자 의료관리지침(법무부예규 제927호) 제4조에 따른 정신건강검진이 필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E구치소의 의무관은 정신과적 병력에 대한 간단한 문답만으로 망인의 정신상태를 ‘정상’ 으로 판정하여 망인에 대하여 제대로 된 상담과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였다.
망인은 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에게 망인이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기존에 복용하던 의약품을 교부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은 위 의약품이 자비구매 물품이라는 이유로 교부를 거절하여 망인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악화되었다. D경찰서 경찰공무원과 E구치소 의무관, 교정공무원들이 위와 같이 계호의무를 위반하고 수용자에 대한 치료의무를 위반하는 행위 등을 하여 망인의 자살기도를 방지하지 못하였고 망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이상, 위 공무원들의 사용자인 피고는 그들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망인 및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관계법령
별지 관계법령 기재와 같다.
다. 인정 사실
1) 망인은 H병원에서 “아편유사제에 의한 의존증후군, 중등도의 우울성 에피소드” 의 진단을 받아 2011. 12. 15.부터 2012. 2. 7.까지 통원치료를 받았다.
2)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망인이 체포되어 D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되자, 유치관리계 경찰공무원들은 망인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음을 알고, 2012. 2. 13.부터 2012. 2. 19.까지 망인의 동생 I이 H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약(알프라낙스, 트라조돈, 쿠에타핀, 웰부트린)을 망인에게 지급하고 그 약의 복용여부를 확인하였다.
나) 망인이 E구치소로 호송될 당시, D경찰서 경찰공무원은 E구치소 교정공무원에게 망인이 신경안정제를 복용 중이라는 내용이 담긴「체포구속피의자 신체확인서」등을 교부하였다. 3) 가) E구치소 의무관은 2012. 2. 21. 신입자인 망인에 대한 신체․정신건강진단을 실시하여 망인에 대한 정신건강검진결과를 ‘정상’으로 판정하면서도, 망인이 우울증 등으로 약을 복용 중이므로 경과관찰을 위해 망인을 의료수용실에 수용시키고 망인에게 진단서, 소견서, 처방전을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나) E구치소 교정공무원은 2012. 2. 23. J병원에서 망인이 기존에 복용하던 약(알프랑, 트라조돈, 쿠에타핀, 웰부트린)을 망인 대신 처방받아 이를 망인에게 교부하고 망인으로부터 약품비 61,740원을 청구하려고 하였으나, 망인은 자비로는 약을 신청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였다(망인이 자비로 약 구매를 거부한 2012. 2. 23. 당시 망인의 영치금은 70,700원이었다). 다) 또한 E구치소 교정공무원이 망인에게 구치소 내 구비되어 있던 항우울제를 교부하려고 하였으나, 망인은 그 약이 기존에 복용하던 약과 다르다는 이유로 복용을 거부하였다.
4) 망인은 구치소 내에서 일과 중에는 동료들과 바둑을 두기도 하는 등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였으며, 관심대상수용자로 지정된 사실도 없다.
5) 망인이 자살기도를 한 당시 01:00경부터 03:36까지 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의 시찰시간은 아래와 같다.
시간 횟수(회)
2012. 2. 27.
1시 2분, 20분, 50분 3회
2시 15분, 35분, 40분, 50분 4회
3시 2분, 15분, 30분 3회
(3:30경 시찰 중 망인의 자실시도 발견)
6) 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은 2012. 2. 27. 03:30경 망인이 자살을 기도한 사실을 발견하고 아래와 같이 조치하였다. 7) 한편, 망인은 1999. 3. 29. 향정신성관리법위반죄 등으로 E구치소에 수용되어 있던 중 이물질을 삼켜 1999. 4. 8.금치 1월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호증의 1, 2, 제8호증, 을 제1호증의 1~3, 제2호증의 1, 제3호증의 1~4, 제4호증의 1, 2, 제6호증의 2, 제7, 8, 9호증, 제10호증의 1, 2,제11, 1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라. 판단
1) 망인의 자살기도에 대하여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망인이 자살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계호상의 과실로 이를 막지 못하였다거나, 망인의 정신질환에 대하여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아 그 질환을 악화시킨 과실로 망인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등의 주의의무위반이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은 수형자의 건강 및 의료 처우에 관하여, 소장은 수용자가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여야 하고(제36조 제1항), 소장은 수용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교정시설 밖에 있는 의료시설에서 진료를 받게 할 수 있으며(제37조 제1항), 수용자가 자신의 비용으로 외부의료시설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게 치료받기를 원하면 교정시설에 근무하는 의사의 의견을 고려하여 이를 허가할 수 있다(제38조)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규정 및 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국가는 구치소 등에 수용되어 있으면서 질병에 걸린 수용자에 대하여 ‘적절한 치료’를 해 줄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고, 여기서 ‘적절한 치료’의 범위와 내용은 수용자들의 질병 내용과 상태, 수용기간, 국가의 예산과 치료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사실을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망인이 D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되어 있는 동안 자살을 예측할 만한 특이한 동태를 보였다는 증거가 없고, 따라서 자살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K경찰서 경찰공무원이 망인의 신병을 E구치소로 인도할 때 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에게 망인의 자살기도가능성에 대하여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는 점,
②망인은 1999.경 이물질을 삼킨 전력이 있으나 이를 자살기도 전력으로 보기에는 부족하고, 망인이 자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01조에 따른 관심대상수용자로 지정된 사실이 없는 점,
③목을 매어 자살하는 경우 2~3분 정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2~3분의 공백조차 없을 정도로 상시적인 감시를 기대하는 것은 구치소의 인적․물적 상황에 비추어 거의 불가능한 점,
④망인이 자살기도를 한 당일 교정공무원들은 10~20분 간격으로 시찰을 하였던 점에 비추어 교정공무원이 수용자에 대한 계호업무를 해태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⑤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은 망인의 자살기도를 발견하고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취하여 병원으로 후송한 점,
⑥망인이 자살도구로 이용한 수건은 그 자체로는 부정물품이 아닌 점,
⑦E구치소 의무관은 망인에 대하여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한 후 망인을 의료수용실에 수용시키고 망인에게 진단서, 소견서, 처방전을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던 점,
⑧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은 J병원에서 망인이 기존에 복용하던 약을 망인 대신 처방받아 이를 망인에게 교부하려고 하였으나, 망인이 자비로는 약을 신청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였는 바, 구치소에 수용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데다가, 망인의 영치금이 자비로 약품을 구입하기 충분한 금액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E구치소 교정공무원들이 망인이 기존에 복용하던 약을 국가의 예산으로 구입하여 망인에게 교부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⑨교정공무원이 망인에게 구치소 내 구비되어 있던 다른 항우울제를 교부하려고 하였으나, 망인은 그 약이 기존에 복용하던 약과 다르다는 이유로 복용을 거부하였던 점에 비추어, 교정공무원들이 망인에 대하여 치료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비록 K경찰서 경찰공무원들과 E구치소의 의무관, 교정공무원들이 사전에 망인이 자살기도를 방지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망인에 대한 계호의무 위반 내지는 망인에 대한 적절한 치료의무 위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달리망인의 자살과 관련하여 위 공무원들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