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피의자 신분증 제대로 확인 안해 엉뚱한 사람 즉심 넘겼다면 국가가 이름을 도용당한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요지
경찰관이 피의자가 불러주는 주민등록번호만 믿고 엉뚱한 사람을 즉결심판에 넘겼다면, 국가가 이름을 도용당한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경찰관이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과 주민번호를 도용당한 사람이 입은 손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
사실관계
B씨는 1984년경 A씨의 신분증을 훔친 다음 공공연히 A씨 행세를 해왔다. 이로인해 A씨는 B씨가 저지르는 크고 작은 범죄에 연루돼 수 차례 경찰에 연행되는 등 억울한 일을 당했다. B씨가 1987년에 저지른 마약투약 범죄경력이 A씨 명의로 수사기록에 기재됐다가 13년만에 삭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 2000년 7월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3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받았다. 그런데 B씨는 2015년 5월 도박죄 현행범으로 붙잡히자 출동한 경찰관에게 또다시 A씨의 주민번호와 이름을 알려줬다.
경찰은 B씨의 진술만 믿고 별다른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A씨 이름으로 부산지법에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즉결심판서를 송달받은 A씨가 이의를 제기하자, 부산지법은 명의모용을 이유로 A씨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A씨는 2015년 9월 경찰관이 B씨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는 1억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고,
1심은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했었다.
판결내용
부산지법 민사4부(재판장 김성수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은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범인의 신원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관이 신분증도 확인하지 않고 범인이 불러주는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신원을 특정했다면, 이는 신원확인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경찰이 신분확인을 소홀히 한 과실로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A씨(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강남종합)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부산지방법원 2016나44865)에서 1심과 같이 국가는 7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부산지방법원 2017. 3. 22. 선고 2016나44865 판결 손해배상(기)
【원고, 피항소인】 A
【피고, 항소인】 대한민국
【제1심판결】 부산지방법원 2016. 5. 3. 선고 2015가단46184 판결
【변론종결】 2017. 3. 8.
【판결선고】 2017. 3. 22.
【주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2015. 9. 30.까지는 연 20%,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 한 돈을 지급하라.
나. B은 1987, 12. 29.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원고의 명의로 향정신성의약품위반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수사기관은 원고의 수사자료표에 위 전과사실 을 기재하였다가, 명의가 도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000. 2. 15. 이를 삭제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부산지방법원 2000가합6707호로 소를 제기하여, 2000. 7. 20. 위 법원에서 내려진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에 따라 피고로부터 3,000만 원을 지급받기도 하였다.
다. B은 2015. 5. 23. 18:10경 도박을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C파출소 소속 경찰관으로부터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받자, 자신의 수배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원고의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고, 관련 서류에 원고의 서명을 하는 등 또다시 원고 행세를 하였다. 위 경찰관은 B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아니한 채 원고에 대한 즉결심판을 청구하였고, 부산지방법원은 2015. 6. 3. 원고의 불출석 상태에서 원고를 도박죄로 벌금 5만 원에 처한다는 내용의 즉결심판(이하 ‘이 사건 즉결심판’이라 한다)을 하였고, 그 즉결심판서가 2015. 6. 8.경 원고에게 송달되었다.
라. B은 2015. 6. 17. 위 다.항 기재와 같은 행위 등으로 인하여 구속되었고, 경찰은 2015. 6. 19. 원고 명의의 즉결심판기록을 자신의 즉심 시스템 전산망에서 삭제하였다.
마. 원고는 위 즉결심판에 대하여 부산지방법원 2015고단4619호로 정식재판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2015. 9. 24. 명의 모용임을 이유로 원고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6호증, 을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가지번호 포함)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피의자의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한 경찰관의 과실로 원고는 이 사건 즉결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원고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각주1)
*각주1) 원고는 B이 30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원고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을 경찰관 등이 방치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주장을 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다른 사실들도 함께 언급하고 있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명의 도용 사건으로 피고로부터 손해배상금으로 3,000만 원을 지급받은 사실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직접적인 청구원인이 아니라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 참작해 달라는 취지로 이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 판단
1) 위 인정사실, 을 제5 내지 7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제의 취지를 종합하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과 관련 법규에 비추어 보면, 법령을 위반하여 피의자의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한 경찰관의 과실로 원고는 이 사건 즉결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원고가 그로 인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①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2항은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하여 수사를 개시·진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제2항은 ‘경찰관은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경찰관이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범인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라고 할 것이므로, 경찰관은 위 규정들에 따라 범인의 신원을 확인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②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도박죄로 B을 수사하게 된 C파출소 소속 경찰관은 B의 신분증도 확인하지 아니하고, B이 불러주는 원고의 주민등록번호만으로 B의 신원을 원고로 특정하였다. 이는 신원확인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③ 지문을채취할형사피의자의범위에관한규칙(법무부령 제00598호) 제1항은 수사자료 표를 작성함에 있어서 지문을 채취할 피의자의 범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고,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제1호는 즉결심판대상자는 수사자료표 작성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사건 즉결심판의 원인된 도박죄를 수사하던 당시 시행 중이던 경찰청훈령인 지문 및 수사자료표에 관한 규칙(2015. 7. 31. 경찰청훈련 제77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도 위와 같은 내용의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규정들은 수사자료표 작성에 관한 규정일 뿐, 수사기관의 신원확인의무에 관한 규정이 아니어서, 위 규정들만으로 경찰관의 즉결심판대상자에 대한 신원확인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④ 피고는, 경찰관이 당시 B에 대한 온라인 지문조회 시스템을 이용한 지문조회를 통하여 신원확인을 하였더라도, 사실상 육안으로는 지문을 구별하기 어렵고, 다른 공범들도 B의 이름을 원고로 알고 있어서, 회피가능성이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지문조회를 통한 신원확인으로 B이 원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또한 신원확인은 지문조회 외에도 B으로부터 신분증을 제출받거나 B과 함께 주민등록상 주소지까지 임의동행하여 실제 주소지 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회피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 나아가,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 본다. 원고가 이 사건 즉결심판을 받게 된 경위, 원고가 입은 피해의 정도, 피고가 이 사건 즉결심판을 바로 잡기 위하여 한 노력의 정도 및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제반사정 등을 고려할 때, 위자료 액수는 7,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3)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손해배상금으로 위자료 7,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일 이후로 원고가 구하는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인 2015. 7. 9.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사건 제1심 관결 선고일인 2016. 5. 3.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속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해야 하는데,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