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에 비상등 안 켜고 길가에 차 세우고 작업하다가 음주차량에 치여 사망한 경우 보험사 책임 없다
요지
야간에 길가에 정차한 뒤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전기공사를 하던 작업자가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쳐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사에 책임이 없다.
사실관계
A씨 등 3명은 2011년 10월 일몰시간 이후 전북 진안군 국도 편도 1차로에서 전선 지중화 작업을 했다. 당시 이들이 타고 온 작업차량은 차폭등과 미등이 켜지지 않은 상태였고, 차량 좌측 전방부가 도로 안쪽을 향하도록 도로 우측에 비스듬히 정차해 약 1m가량 도로를 침범한 상태였다.
작업을 마친 A씨 등은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도로 위를 걷던 중 만취 운전자가 몰던 무보험 차량에 부딪쳐 현장에서 사망했다. A씨와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담보부 자동차 보험계약'을 맺은 DB손해보험은 유족들에게 보험금 1억5000여만원을 지급했다.
DB손해보험은 이후 A씨와 같은 보험을 체결한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중복보험에 따른 분담금 절반을 청구했고, 한화는 DB에 분담금 7500여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후 한화는 "사고는 음주운전 차량 뿐만 아니라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정차해있던 작업 차량의 과실도 있으므로 우리는 무보험 차량으로 인한 사고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며 DB를 상대로 앞서 지급한 분담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작업차량이 비상등을 켰으면 음주운전 차량이 작업차량 충분히 피해 운행했을 가능성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심은 일몰 이후였어도 사물의 식별이 어렵지 않은 시각이었던 만큼 비상등을 켜지 않았더라도 일반 운전자였다면 정상적인 운행을 했을 것이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에서는 일몰시간 후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정차한 작업차량의 과실과 교통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판결내용
대법원 민사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차의 운전자는 밤(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에 고장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도로에서 차를 정차 또는 주차하는 경우 차폭등과 미등을 켜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이 주정차된 차량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차도와 보도의 구별이 없는 도로의 경우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로부터 중앙으로 0.5m 이상의 거리를 두어 보행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일몰 후이지만 사물이 보이는 시각이었다고 할지라도 작업차량이 도로교통법에 따라 점등을 했을 경우 식별력이 현저히 증가했을 것이라며 가해자가 비록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피고 차량들이 점등을 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 가해자가 보다 멀리서 피고 차량들을 발견하거나 그에 따라 감속 등의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없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작업차량이 우측 0.5m이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피해자들이) 좌측 도로 위를 보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작업차량이 규정에 따라 점등을 하고 우측 공간을 확보해 정차했다면 가해차량이 보다 멀리서 피해자차량을 발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한화손해보험이 DB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대법원 2016다259417)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6다259417 판결 구상금
【원고, 상고인】 ◇◇손해보험 주식회사, 서울특별시 ○○○구 ○○○로 **(○○○동), 대표이사 박○○,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담당변호사 이승태, 최봉기, 김일희, 주덕, 최훈일
【피고, 피상고인】 ◆◆손해보험 주식회사(변경 전 상호: ◆◆◆◆해상보험 주식회사), 서울 ○○구 ○○○로 ***(○○동), 대표이사 김○○,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비전, 담당변호사 박명환, 박영만, 최원석, 박호성, 장성민, 김서현
【원심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6. 9. 23. 선고 2016나51724 판결
【판결선고】 2019. 8. 29.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모든 차의 운전자는 밤(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에 고장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도로에서 차를 정차 또는 주차하는 경우 차폭등과 미등을 켜서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이 주정차된 차량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도로교통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 제1호 참조).
또한 모든 차의 운전자는 도로에서 정차할 때에 차도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정차하여야 하고, 다만 차도와 보도의 구별이 없는 도로의 경우에는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로부터 중앙으로 0.5m 이상의 거리를 두어 보행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도로교통법 제34조,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11조 제1항 제1호 참조).
2.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해자 외 2인은 일몰 시간 이후인 2011. 10. 28. 18:00경 전북 ○○군 ○○읍에 있는 2*번 국도의 진안 방면 편도 1차로에서 전선지중화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2) 피해자 일행이 위 작업을 수행할 당시 차폭등과 미등을 켜지 않은 상태로 전선지중화 작업차량인 95러**** 차량(이하 ‘피고차량1’이라고 한다)이 좌측 전방부가 도로 안쪽으로 향하도록 도로 우측에 비스듬히 정차하고 있었고, 역시 작업차량인 광주80나****호 차량(이하 ‘피고차량2’라고 한다)이 피고차량1 전방에서 도로 우측에 정차하고 있었다.
(3) 가해자는 그 무렵 혈중알코올농도 0.287%의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가해차량을 운전하여 위 작업현장 부근을 주행하다가 도로 우측에 정차하고 있던 피고차량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해차량 오른쪽 앞부분으로 피고차량1의 왼쪽 뒤 모서리 부분부터 후사경 부분까지 긁고 지나가듯 충격하고, 마침 작업을 마친 후 피고차량2에 탑승하기 위해 도로 위를 도보로 이동하던 피해자 외 2인을 연달아 들이받아 피해자 외 2인으로 하여금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인하여 모두 사망하게 하였다.
(4)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편도 1차로로 그 폭이 3.3m이고, 피고차량1이 도로를 약 1m 정도 침범한 상태로 주차되어 있어 피고차량1과 중앙선 사이에 약 2.3m의 거리가 있었으며, 가해차량의 폭은 1.63m이었다.
나. 원심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이 사건 사고는 가해차량 운전자의 비정상적인 음주운전이 원인이 되었다고 보일 뿐, 이 사건 사고의 발생과 피고차량들의 주차 위치나 등화를 켜지 않은 것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전제로 하는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3. 가.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의 사정들에 비추어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시각이 일몰 이후라도 인공조명 없이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이른바 시민박명 상태였던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낮에도 점등을 한 차량과 그렇지 않은 차량 사이의 식별력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점에 비추어, 비록 시민박명 상태라고 할지라도 피고차량들이 도로교통법에 따라 점등을 하였을 경우 그 식별력이 현저히 증가함은 당연하다.
(2) 그렇다면 가해자가 비록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피고차량들이 점등을 하였을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하여 가해자가 보다 멀리서 피고차량들을 발견하거나 그에 따라 감속 등의 조치를 취하였을 가능성이 없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3) 한편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11조 제1항 제1호가 따로 구분된 보도가 없는 도로의 경우 차량 우측에 0.5m 이상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한 취지는 보행자들이 위험한 차량의 좌측 도로부분이 아니라 우측 공간으로 안전하게 보행하도록 하거나 동승자들이 차량의 우측 출입문으로 승하차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아야 한다.
(4) 그런데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던 이 사건 도로의 편도 1차로의 폭은 약 3.3m, 우측 갓길의 폭은 약 0.5~0.8m이었고, 폭이 약 1.75m인 피고차량들이 사고 당시 도로를 약 1m 침범한 상태로 정차 중이었으므로 당시 피고차량들 우측에 0.5m 이상의 공간이 존재할 수 없었음은 계산상 명백하다.
(5) 또한 전선지중화작업을 위하여 필요한 전신주와 통신케이블이 도로 우측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경험칙상 작업현장과 바로 인접한 후방에 작업차량을 정차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 일행은 피고차량2의 바로 우측 전방에서 작업을 하였을 개연성이 높다.
(6)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작업을 마치고 피고차량들에 탑승하기 위해 돌아오려던 피해자 일행이 피고차량들 우측에 충분한 공간이 없자 피고차량2의 좌측 문으로 승차하기 위하여 피고차량2의 좌측 도로 위를 보행하다가 당시 좌측 전방부를 도로 안쪽으로 비스듬히 정차한 피고차량1의 좌측 전방부로 인하여 시야가 가려져 가해차량이 돌진하여 오는 것을 보지 못하여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7) 결국 피고차량들이 도로교통법 규정에 따라 점등을 하고 우측 공간을 확보하여 정차하였다면 가해차량이 보다 멀리서 피고차량들을 발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피해자 일행이 피고차량들 우측으로 보행함으로서 피해를 최소화 하여 최소한 전원이 현장에서 즉사하는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여지가 충분하다.
(8) 그렇다면 도로교통법상 주정차방법을 위반하여 점등을 하지 않거나 도로 우측 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피고차량들의 과실과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만취 상태에서 운전한 가해차량의 과실이 중대하다고 하여 피고차량들의 과실과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나.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차량들의 과실과 이 사건 사고의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도로교통법상 주정차방법 및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