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줄 모르고 자신의 계좌를 이용해 피해자의 돈을 송금받아 이를 전달한 수취인은 피해자에게 그 돈을 다시 돌려줄 의무가 없다.
범죄에 연루된 줄 몰랐고 송금한 돈으로 실질적인 이득을 봤다고 보기 어렵다점
사실관계
이씨는 A씨로부터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과장이라고 거짓말하며 이씨에게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으니 지정해주는 다른 통장으로 돈을 모두 이체하라"고 했다. 이 말에 속은 이씨는 통장에 있던 돈 3000여만원을 A씨가 말한 통장으로 이체했다. 이씨가 돈을 이체한 통장은 허씨 계좌였다.
허씨는 우연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A씨와 대화를 했는데, A씨가 허씨에게 계좌로 돈을 입금할 테니 그 돈으로 비트코인(가상화폐)을 사서 보내주면 입금액의 1%를 수수료로 주겠다고 제안했고 허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이씨가 3000여만원을 이체하자 A씨 돈으로 착각한 허씨가 이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고,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을 모르고 이를 A씨가 지정한 계좌로 이체했다. 보이스피싱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씨는 허씨를 상대로 3000여만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내용
제주지법 민사1단독 김현룡 부장판사는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수취인이 송금의뢰인으로부터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받은 경우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라도 부당이득제도는 수취인이 법률상 원인 없이 재산상 이득을 가진 경우 공평·정의의 이념에 근거해 수취인에게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취인이 실질적으로 이득을 받은 것이 없다면 반환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
이씨가 허씨에게 송금한 돈은 모두 비트코인 구매에 사용돼 A씨에게로 넘어갔고, A씨는 이를 입금받은 후 허씨에게 주겠다고 한 수수료도 주지 않고 잠적했다. 이러한 경위를 봤을 때 허씨는 이씨가 송금한 돈으로 실질적인 이득을 봤다고 보기 어려워 이씨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채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보이스피싱 피해자 이모씨가 계좌 명의자 허모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제주지방법원 2018가단56062)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제주지방법원 2019. 8. 26. 선고 2018가단56062 판결 부당이득금
【사건】 2018가단56062 부당이득금
【원고】 이BB,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제주로펌,
담당변호사 김도완, 박현민, 소송복대리인 변호사 장석우
【피고】 허CC
【변론종결】 2019. 7. 22.
【판결선고】 2019. 8. 26.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위적 및 예비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28,723,444원 및 이에 대하여 2018. 7.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1)
[각주1] 원고는 주위적으로 ‘부당이득반환’을, 예비적으로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각 청구하고 있다.
다만 위 각 청구는 서로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성질상으로는 ‘순위를 붙인 선택적 청구’에 해당하나, 원고가 붙인 명칭대로 주위적, 예비적 청구로 부르기로 한다.
【이유】
1. 기초사실
○ 원고는 2018. 4. 23.부터 4. 24. 사이에 성명불상자로부터 ‘948,000원이 결제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그 발신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성명불상자는 자신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김민호 수사과장이라고 거짓말하며 “원고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되어 구속될 수 있으니 수사에 협조하라, 원고의 ◇◇금융투자 계좌에 있는 돈을 다른 통장 계좌로 이체하라.”고 하였다.
이에 원고는 2018. 4. 24. 14:23:27 성명불상자가 지정한 피고 명의의 ▲▲은행 계좌로 30,000,000원을 이체하였다.
○ 한편 피고는 2018. 4. 24. ‘○○판’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상화폐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던 중 ‘재정거래 하실 분’이라는 글을 게재한 성명불상자와 카카오톡 문자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성명불상자는 피고에게 “피고의 계좌로 돈을 입금해 줄 테니 가상화폐를 구입하여 보내 주면 입금액의 1%를 수수료로 주겠다.”고 제안하였고, 피고는 이를 승낙하였다.
○ 피고는 원고가 피고의 계좌로 이체한 30,000,000원을 포함하여 40,600,000원을 A주식회사(이하 ‘주식회사’는 생략한다)로부터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부여받은 가상계좌(모계좌는 A의 ▲▲은행 계좌이고, 피고가 부여받은 가상계좌의 ID는 185***이다)에 2018. 4. 24. 14:44:15 입금하고, 그 돈으로 2018. 4. 24. 14:45:31 A 운영의 ‘○비트’라는 가상화폐거래소에서 40,579,710원(비트코인 1개당 10,079,000원, 거래수량 4.02616431개) 상당의 비트코인(가상화폐)을 매수한 다음, 2018. 4. 24. 15:14:50 위 비트코인을 성명불상자가 지정한 계좌로 이체하였다.
[인정근거] 갑 제1, 2, 5호증, 을가 제1, 2, 4호증, 을나 제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주위적 청구(부당이득반환)
가. 원고의 주장 요지
피고는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 없이 원고로부터 30,000,000원을 이체 받았으므로, 원고에게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
나. 관련 법리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다41263, 41270 판결 등).
그러나 부당이득제도는 이득자의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갖지 못한 경우에 공평·정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득자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으로서 이득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귀속된 바 없다면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10다37325, 37332 판결 등).
다. 판단
원고가 피고에게 계좌이체로 송금한 돈은 모두 곧바로 비트코인 구매에 사용되었고 구매한 비트코인은 성명불상자가 지정한 계좌로 이체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갑 제3호증의 1, 제6호증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피고의 ▲▲은행 계좌는 2018. 4. 25. 00:16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급정지되었고, 그 후 그 계좌에 남아 있던 돈은 2018. 7. 18. 위 특별법에 따라 채권소멸절차를 거쳐 원고와 다른 피해자에게 전부 환급처리된 사실이 인정되는바, 그렇다면 원고의 계좌이체 경위와 피고가 이체된 돈으로 가상화폐를 구매하여 그 가상화폐를 성명 불상자에게 이체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원고로부터 이체받은 돈의 실질적 이득자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그 이득이 피고에게 귀속되었다고 볼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 채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주위적 청구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예비적 청구(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가. 원고의 주장 요지
피고는 원고로부터 이체받은 돈이 보이스피싱 범행에 의해 입금된 것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료를 얻을 목적으로 위 돈으로 가상화폐를 구매하여 성명불상자에게 이체하였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입은 위 이체금액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관련 법리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등).
다. 판단
1) 피고가 자신의 계좌에 이체된 돈으로 성명불상자의 지시에 따라 가상화폐를 구매하고 그 가상화폐를 성명불상자가 지정한 계좌로 이체하는 행위를 할 당시 그러한 행위가 성명불상자의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된다는 점을 알았거나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2) 오히려 기초사실과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정들이 인정될 뿐이다.
○ 피고도 수수료 1%를 주겠다는 성명불상자의 제안에 속아 원고가 이체한 돈을 성명불상자가 보낸 돈인 줄 알고 그 돈으로 가상화폐를 구매하여 이를 성명불상자에게 이체한 것으로 보인다.
○ 이 사건 당시까지 접근매체를 양도받아 조직원이 인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수료 지급을 조건으로 비트코인 대리구매를 요청하여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취득한 금원을 인출, 은닉하는 방식의 범행은 아직 언론이나 수사기관을 통하여 알려진 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피고는 이 사건 보이스피싱 범행 다음날 자신의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를 당하였고 그 후 계좌에 남은 돈도 모두 원고 및 다른 피해자에게 환급되었으며, 피고가 성명불상자의 위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인하여 어떤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다.
○ 피고는 이 사건 보이스피싱 범행과 관련하여 김해서부경찰서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바 있으나, 피의자로 입건되거나 기소되었다는 자료는 없다.
3) 따라서 피고에게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예비적 청구에 관한 원고의 주장도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주위적, 예비적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