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Phishing, 금융기관 등의 웹사이트나 거기서 보내온 메일로 위장해 개인의 인증번호나 신용카드번호, 계좌정보 등을 빼내 이를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사기수법) 범죄에 이용된 계좌의 명의자도 피해자에게 피해금액을 돌려줄 책임이 있다.
피해자가 피싱범에게 속아 송금한 돈에 대해 계좌 명의인도 부당이득반환책임을 진다는 취지
사실관계
김씨는 지난 2012년 12월 인터넷 메신저에서 사촌누나를 사칭한 피싱범에게 속아 그가 알려준 계좌로 80만원을 입금했다. 김씨가 돈을 이체한 계좌는 정씨의 것이었다. 나중에야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정씨를 상대로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김씨의 송금으로 정씨가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가 피싱범에게 통장을 건넨 행위가 김씨의 피해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내용
서울중앙지법 민사8부(재판장 김지영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돼 있는 경우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봐야 한다. 송금 의뢰인이 수취인 예금계좌에 자금을 이체해 입금 기록이 되면 둘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 입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한다.
송금 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계좌이체에 의해 수취인이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 송금 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진다. 김씨가 계약 등 법률상 원인 없이 피싱범에게 속아 정씨의 예금계좌에 80만원을 이체함에 따라 정씨가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했으므로 정씨는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피싱 피해자 김모(29)씨가 범죄에 사용된 통장 명의자 정모(57)씨를 상대로 80만원을 돌려달라며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항소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4나62335)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판례해설
종래의 하급심 판결들은 보이스 피싱 사건에서 계좌명의인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정하였다.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명의인이 실질적인 이득을 얻었음을 반환청구자가 입증하여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11.9.8. 선고 2010다37325판결) 다만 계좌명의인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의 방조책임을 물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되 피해자의 과실을 상계하여 책임을 제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11.6. 선고 2014나62335 판결은 대법원 2010다41263, 41270 판결을 근거로 피해자가 계좌명의인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에서 범죄에 이용된 계좌의 명의자도 피해자에게 피해금액을 돌려줄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실질적인 이득의 귀속에 대해 반환청구자가 입증하여야 한다는 취지여서 아래의 대법원 판결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1. 대법원 2010.11.11. 선고 2010다41263,41270판결
갑이 그 명의의 계좌에 을이 계좌이체 방식으로 송금한 금원을 입금받음으로써 그 계좌개설은행에 대하여 예금반환청구권을 취득하였고, 나아가 갑과 을 사이에 위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 갑이 얻은 이익은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서 을에 대하여 부당이득이 된다.
2. 대법원 2011.9.8. 선고 2010다37325판결
갑이 송금한 돈이 병의 계좌로 입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병이 위 돈 상당을 이득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병이 이를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러 실질적인 이득자가 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갑의 송금 경위 및 정이 이를 인출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병이 위 돈을 송금 받아 실질적으로 이익의 귀속자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3. 대법원 2014. 10. 15., 선고, 2013다207286, 판결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의 사이에서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 즉 예금반환청구권자로 보아야 한다. 또한 예금거래기본약관에 따라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계좌에 자금이체를 하여 예금원장에 입금의 기록이 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그리고 이때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
4.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갑이 사기범에게 통장과 현금카드, 주민등록증 사본을 넘길 당시 그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사 갑이 주의를 했어야 했다 해도 통장은 이미 을이 사기범에게 속은 후 재산을 처분하는 데 이용된 수단에 불과해 갑이 주의를 하지 않은 것과 을이 손해를 입게 된 원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다51239, 판결 오입금반환청구및제3자이의의소
【판시사항】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구좌에 계좌이체를 한 경우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하는지 여부(적극) 및 이 경우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의 부존재를 이유로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이 아닌 수취은행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계좌이체는 은행 간 및 은행점포 간의 송금절차를 통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자금을 이동시키는 수단이고, 다수인 사이에 다액의 자금이동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그 중개 역할을 하는 은행이 각 자금이동의 원인인 법률관계의 존부, 내용 등에 관여함이 없이 이를 수행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현금으로 계좌송금 또는 계좌이체가 된 경우에는 예금원장에 입금의 기록이 된 때에 예금이 된다고 예금거래기본약관에 정하여져 있을 뿐이고, 수취인과 은행 사이의 예금계약의 성립 여부를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의하여 좌우되도록 한다고 별도로 약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구좌에 계좌이체를 한 때에는,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이때,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되지만, 수취은행은 이익을 얻은 것이 없으므로 수취은행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하지 아니한다.
【참조조문】
민법 제702조, 제741조
【참조판례】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다59673 판결
【전문】
【원고, 피상고인】
【피고, 상고인】
중소기업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율촌 담당변호사 윤용섭외 2인)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법 2007. 6. 29. 선고 2007나1196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피고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계좌이체는 은행 간 및 은행점포 간의 송금절차를 통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자금을 이동시키는 수단이고, 다수인 사이에 다액의 자금이동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그 중개 역할을 하는 은행이 각 자금이동의 원인인 법률관계의 존부, 내용 등에 관여함이 없이 이를 수행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현금으로 계좌송금 또는 계좌이체가 된 경우에는 예금원장에 입금의 기록이 된 때에 예금이 된다고 예금거래기본약관에 정하여져 있을 뿐이고, 수취인과 은행 사이의 예금계약의 성립 여부를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의하여 좌우되도록 한다고 별도로 약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구좌에 계좌이체를 한 때에는,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다59673 판결 참조). 이때,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되지만, 수취은행은 이익을 얻은 것이 없으므로 수취은행에 대하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2.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판결에서 채용하고 있는 증거들을 종합하여, 소외 1 주식회사(이하 ‘ 소외 1 회사’라고 한다)는 2005. 10. 19. 부도로 인하여 2005. 11. 23. 폐업을 한 회사로 이 사건 계좌이체 당시 원고와 소외 1 회사 사이에는 거래관계가 없었음에도 원고가 거래처인 소외 2 주식회사에게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하려 하는 과정에서 원고 직원의 잘못으로 소외 1 회사 명의의 계좌로 송금이 의뢰된 사실을 인정한 후,
송금의뢰인인 원고의 수취인 소외 1 회사의 계좌로의 계좌이체는 법률적 원인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소외 1 회사는 수취은행인 피고에 대하여 원고의 위 계좌이체에 기한 예금채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으므로 결국 피고는 원고의 위 계좌이체에 기하여 원고의 계좌에서 출금된 금액 상당의 금전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게 되어, 법률상 원인 없이 동액 상당의 이득을 얻고 그로 인하여 송금의뢰인인 원고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다 할 것이어서 이를 부당이득으로서 원고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 송금의뢰인인 원고가 수취인인 소외 1 회사의 예금구좌에 계좌이체를 한 때에 원고와 소외 1 회사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소외 1 회사가 피고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고 해석하여야 하므로, 이로 인하여 피고가 어떠한 이익을 얻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법률상 원인 없이 부당한 이득을 얻었음을 전제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에는 계좌이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으로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영란(재판장) 김황식 이홍훈(주심) 안대희
대법원 2015. 6. 24., 선고, 2014다231224, 판결 예금
【판시사항】
甲이 인감도장에 乙 은행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고 丙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는데, 丁이 丙 등과 공모하여 甲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戊로 하여금 甲을 사칭하도록 하여 甲 명의의 예금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한 후 예금을 인출한 사안에서, 甲의 행위가 丁 등의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乙 은행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甲이 인감도장에 乙 은행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고 丙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는데, 丁이 丙 등과 공모하여 甲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戊로 하여금 甲을 사칭하도록 하여 甲 명의의 예금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한 후 예금을 인출한 사안에서, 甲이 다른 사람에게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거나 인감도장에 비밀번호를 표시해 두는 등의 행위를 하였더라도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丁 등이 사기행위를 저지를 것으로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위 사기행위는 乙 은행이 거래상대방의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인하여 초래되었다고 보일 뿐이므로 乙 은행이 입은 손해와 甲의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데도, 甲의 행위가 丁 등의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乙 은행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민법 제760조 제1항, 제3항
【전문】
【원고, 상고인 겸 피상고인】
【피고, 피상고인 겸 상고인】
농협은행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전병하 외 2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4. 10. 23. 선고 2014나2009500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의 상고이유 제1, 2점에 관하여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이 사건의 경우 예금지급청구자에게 정당한 변제수령권한이 없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피고에게 예금주인 원고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예금지급청구자의 정당한 예금인출권한 여부를 조사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예금지급청구자에게 정당한 예금인출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예금을 지급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관련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원고의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수인이 공동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민법 제760조 제1항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각 행위가 독립하여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다10275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하고,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을 지우려면 방조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실에 의한 행위가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과실에 의한 방조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 방지를 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 등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는 2002. 11. 15. 피고 남서초지점에 그 명의로 예금계좌(계좌번호 생략, 이하 ‘이 사건 예금계좌’라고 한다)를 개설하여 사용하였다. 원고는 82세 여성으로 자신의 기억력 감퇴를 우려하여 인감도장에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다. 원고는 자신의 집사라 자칭하는 소외 1과 평소 자주 드나드는 다방의 주인인 소외 2에게 가끔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의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었다.
(2) 소외 3은 소외 1을 통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 6억 원 이상의 예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소외 1, 일명 김사장 및 성명불상자(이하 ‘소외 3 등’이라고 한다)와 원고 모르게 위 예금을 인출하기로 공모하였다. 그리하여 소외 3은 소외 1로부터 원고의 주소, 주민등록번호, 이 사건 예금계좌의 잔고와 계좌번호의 일부가 표시된 현금자동인출기의 거래명세표 및 비밀번호를 건네받고, 김사장으로 하여금 원고와 비슷한 연령의 여자 사진을 부착하고 인적사항 등 그 밖의 사항은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동일하게 기재하는 방법으로 원고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다음, 원고 명의의 휴대전화가입신청서를 위조하여 원고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였다.
(3) 소외 3은 2012. 4. 2. 성명불상자로 하여금 원고를 사칭하도록 하며 그를 대동한 채 남양주지점을 방문하여 원고 명의의 이 사건 예금통장 및 인감의 분실신고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외 3과 성명불상자가 피고 직원에게 분실한 예금계좌의 계좌번호 일부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 직원은 의심 없이 계좌번호를 알려주었고, 소외 3과 성명불상자는 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하였으며, 곧바로 위 휴대전화를 이용한 텔레뱅킹을 신청하였다. 이어서 소외 3 등은 그날 서울 양재동 소재 피고 AT센터지점에 가서 변경된 인감을 이용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360,000,000원을 인출하고, 그날부터 2012. 5. 19.까지 사이에 텔레뱅킹을 이용하여 총 20회에 걸쳐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286,000,000원을 인출하는 등 합계 646,000,000원을 인출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기행위’라고 한다).
다. (1) 원심은, 금융거래의 전형성, 대량성 등에 비추어 통상적인 신분확인절차를 거치거나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는 이용자에 대하여 금융기관이 추가적인 신분확인절차를 요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금융거래의 이용자로서도 금융거래정보 및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여 위와 같은 정보가 함부로 노출됨으로써 발생하는 금융기관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전제한 다음,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에게는 자신의 예금통장·인감·비밀번호 등의 관리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고 이러한 원고의 과실과 소외 3 등의 이 사건 사기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피고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의 예금반환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거나 인감도장에 비밀번호를 표시해 두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원고가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소외 3 등이 이 사건 사기행위를 저지를 것으로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이 사건 사기행위는 소외 3 등이 원고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성명불상자를 원고로 사칭하게 하여 예금통장 및 인감의 분실신고를 한 후 피고로부터 예금통장을 재발급받고 인감을 변경하자마자 당일 거액의 예금을 인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거래상대방의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인하여 초래되었다고 보일 뿐이므로 피고가 입은 손해와 원고의 위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의 행위는 소외 3 등의 이 사건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피고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고와 피고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보영(재판장) 민일영 김신 권순일(주심)
대법원 2014. 10. 15., 선고, 2013다207286, 판결 부당이득금반환
【판시사항】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는지 여부(적극)
【참조조문】
민법 제702조, 제741조,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1조, 제2조 제4호, 제3조 제1항
【참조판례】
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다41263, 41270 판결(공2010하, 2248)
【전문】
【원고, 상고인】
【피고, 피상고인】
【원심판결】
전주지법 2013. 5. 31. 선고 2012나4445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주위적 청구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원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원고가 대검찰청 수사관을 사칭한 성명불상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피고 명의 계좌에 610만 원을 송금한 사실, 피고는 대출을 해준다는 성명불상자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 명의의 계좌를 성명불상자로 하여금 사용하도록 허용하였고, 성명불상자는 원고가 송금한 돈을 피고 명의 계좌에서 인출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 명의 계좌에서 610만 원을 송금받음으로써 위 금액 상당의 이익을 얻고 원고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원고의 주위적 주장에 대하여,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가 계좌이체한 금원을 피고가 실질적으로 취득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나.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그대로 수긍할 수 없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의 사이에서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 즉 예금반환청구권자로 보아야 한다.
또한 예금거래기본약관에 따라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계좌에 자금이체를 하여 예금원장에 입금의 기록이 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그리고 이때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다41263, 41270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심은 성명불상자가 원고로부터 송금받은 금원을 피고 명의 계좌에서 인출했다고 사실인정을 하였으나,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이 인정한 위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위와 같이 피고 명의 계좌로 이체한 금원에 대한 예금반환청구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라 할 것이므로, 원심으로서는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원고의 계좌이체에 의하여 피고가 취득한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에 관하여 부당이득이 성립함을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그 반환을 명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가 피고 명의 계좌로 송금한 금원이 성명불상자에 의해 모두 인출되었음을 전제로 피고에게 위 금액 상당의 실질적 이득이 귀속된 바 없다고 보아 부당이득의 반환을 구하는 원고의 주위적 주장을 배척하고 말았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계좌이체된 금원의 실질적 귀속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결론
그러므로 주위적 청구에 관한 원고의 상고를 받아들이는 이상 예비적 청구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으므로 그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