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체결 당시 정확한 병명은 알지 못했더라도 ‘심각한 이상’ 알리지 않았다면 고지의무 위반해당한다.
요지
보험가입자가 보험계약 당시 정확한 병명은 알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신체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는 보험계약 전 보험사에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
『이 같은 사실을 보험사 측에 알리지 않았다면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
사실관계
나씨는 2014년 9월 현대해상과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근무하던 김씨를 피보험자, 수익자를 나씨 본인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 보험에는 김씨가 질병으로 사망할 경우 2억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특별약관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보험계약 이틀 후 김씨는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이에 나씨는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현대해상이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해상 측은 재판과정에서 김씨가 몸이 아픈 것을 숨겼으므로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1,2심은 결핵증상은 감기나 다른 폐질환 또는 담배로 인한 증상으로 취급돼 증상으로만 진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면서 보험계약자인 나씨와 피보험자인 김씨가 폐결핵을 숨긴 채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거기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며 나씨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내용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보험계약 당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한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일정 기간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때 피보험자의 '중대한 과실'이란 현저한 부주의로 중요한 사항의 존재를 몰랐거나 중요성 판단을 잘못해 그 사실이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임을 알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이때 과실이 있는지는 보험계약의 내용, 고지해야 할 사실의 중요도, 보험계약의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 보험자와 피보험자 사이의 관계 등 제반사정을 참작해 사회통념에 비추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피보험자인 김모씨가 앓은 폐결핵은 발열, 체중감소, 식욕부진,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김씨의 동거인은 김씨가 사망 2주전부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출근도 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결핵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소모성 질환이기 때문에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경과가 악화돼 사망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김씨의 동거인이 '김씨의 건강이 악화돼 보험에 가입하게 됐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보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정확한 병명을 알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김씨가 질병에 걸려 신체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심 판결에는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해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사실을 오인하거나 고지의무 위반에 있어서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나모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대법원 2018다281241)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1.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일정 기간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상법 제651조).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현저한 부주의로 중요한 사항의 존재를 몰랐거나 중요성 판단을 잘못하여 그 사실이 고지하여야 할 중요한 사항임을 알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고, 그와 같은 과실이 있는지는 보험계약의 내용, 고지하여야 할 사실의 중요도, 보험계약의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 보험자와 피보험자 사이의 관계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4다73336, 73343 판결 참조).
2. 가. 원심은, 망인이 고도의 폐결핵이라는 중병을 앓아왔고 사망하기 2주 전부터는 몸이 아파 출근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이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보험계약자인 원고와 피보험자인 망인이 위와 같은 사실을 숨긴 채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거기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나. 그러나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망인은 원고 운영의 노래방에서 근무하던 사람인데, 원고는 2014. 9. 5. 망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망인이 질병으로 사망시 2억 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질병사망담보 특별약관에 가입하였다.
나) 망인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일로부터 이틀 후인 2014. 9. 7. 사망하였는데, 부검결과 사인은 ‘고도의 폐결핵’으로 밝혀졌다.
다) 원심에서 증거로 제출된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고도의 폐결핵’은 통상적으로 폐결핵이 양측 폐를 침범하여 폐 손상이 심한 경우를 의미하며, 발열, 체중감소, 식욕부진, 호흡곤란, 기침, 가래, 객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라) 망인의 동거인 양BB은 망인이 사망한 2014. 9. 7. 경찰에 출석하여 망인이 2주전부터 밥을 넘기지 못하는 등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몸이 아파 원고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출근을 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침, 가래, 체중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마) 원고는 제1심 법원의 자신에 대한 당사자본인신문 과정에서 망인에게 “너 왜 살이 이렇게 자꾸 빠지니? 병원에 좀 가보지 그러냐”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바) 원심에서 증거로 제출된 ○○의료원 내과과장 이CC가 작성한 의료자문회신서에는 ‘결핵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소모성 질환이기 때문에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경과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기재되어 있다.
사) 망인의 동거인 양BB 역시 망인의 사망 이틀 전에 망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양BB은 경찰에서 망인의 체중이 감소하는 등 건강이 악화되어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아는 언니가 소개해 준 보험설계사가 망인이 살고 있는 여관으로 찾아와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아) 양BB이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보험설계사 이DD은 경찰에서 원고가 자신을 망인과 양BB에게 소개해 주었다고 진술하였다.
2) 이에 의하면, 보험계약자인 원고와 피보험자인 망인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정확한 병명을 알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질병에 걸려 신체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망인이 사망에 이른 경과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의 위와 같은 증상은 생명의 위험 측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중요한 사항’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원고와 망인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러한 사정을 고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현저한 부주의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원고 내지 망인이 고지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하여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사실을 오인하거나 고지의무 위반에 있어서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