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 받은 질병을 치료하기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에 사고로 사망했다면 이 역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사실관계
A씨는 1992년 이황화탄소 중독, 난청 등의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A씨는 입원과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지난해 12월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에 다녀오던 중 사고로 머리를 땅에 부딪쳐 사망했다.
유족들은 A씨가 평소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으로 평형감각이 좋지 않아 사망 사고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A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고, 질병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이에 반발한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내용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A씨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녀오던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으므로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위험이 반드시 업무 수행 그 자체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업무상 재해를 치료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위험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서울행정법원 2019구합62482)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2019. 12. 12. 선고 2019구합62482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사건】 2019구합62482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원고】
【피고】 근로복지공단
【변론종결】 2019. 10. 31.
【판결선고】 2019. 12. 12.
【주문】
1. 피고가 2019. 2. 25. 원고에게 내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망 유AA(1934. **. **.생 남자,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주식회사 ◆◆◆에서 근무하던 중 1992. 6. 8. 이황화탄소 중독증, 안저이상, 난청 등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 그 무렵부터 구리시 ▲▲로 **에 있는 ◇◇◇병원에서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으며 요양하던 사람이고, 원고는 망인의 배우자이다.
나. 망인은 2018. 12. 7. 16:18경 주거지인 구리시 ▲▲로**번길 *** 근처의 구리시 △△동 ***-** 앞 도로에서 원동기장치자전거를 타고 가던 도중 넘어지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같은 날 16:38경 구리시 ▶▶로 ***에 있는 ◈◈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2018. 12. 28. 05:10경 직접사인 ‘뇌간압박 및 연수마비’로 사망하였다.
다. 원고는 2019. 1. 14. 피고에게 망인이 평소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으로 평형감각이 좋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사고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19. 2. 25. 망인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2조에서 말하는 요양 중의 사고라고 보기 어렵고, 산재로 승인된 상병인 이황화탄소 중독증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내렸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부터 갑 제4호증까지,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관련 법령 및 관련 법리
1) 관련 법령은 별지 기재와 같다.
2)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재해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업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업무상 재해로 인한 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료과오가 개입하거나 약제나 치료방법의 부작용으로 인하여 새로운 상병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이 또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위와 같은 의료과오나 약제 내지 치료방법의 부작용과 새로운 상병의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유무를 따질 때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2두13055 판결 등 참조).
나. 판단
1) 갑 제2호증, 갑 제5호증부터 갑 제8호증까지, 을 제2, 3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① 망인은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약 30분 전인 2018. 12. 7. 15:53경 요양의료기관인 ◇◇◇병원에 도착하여 16:06경 진료를 받았고, 그곳에서 건네받은 처방전을 가지고 근처인 구리시 ▲▲로 **에 있는 ○○약국으로 가서 약을 건네받았다.
② ◇◇◇병원 및 ○○약국은 망인의 주거지로부터 약 500m 떨어져 있고,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망인의 주거지와 ◇◇◇병원 및 ○○약국을 오가는 경로 위에 있다.
③ 망인의 사망진단서상 사인은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표 - 생략)
④ ◇◇◇병원에서 근무하는 망인의 주치의는 최근 3개월간 망인이 두통, 입마름, 호흡 곤란을 호소하였고, 망인은 간 질환과 고혈압을 앓고 있어 위 각 증상과 질병에 대한 약물 치료를 진행하였으며, 망인이 가끔 두통과 난청, 어지러움을 호소하였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상병이 이 사건 사고 및 망인의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을 밝혔다. 피고의 자문의들은 망인의 사망이 교통사고로 인한 경막하 출혈 등 외상성 손상이 원인이 된 것으로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상병인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2) 위 인정사실을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보면 망인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의 상병을 치료하고자 요양기관인 ◇◇◇병원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다녀오던 중 발생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서 망인의 사망과 그가 수행하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출퇴근 재해 등으로 나누어 이를 유형화하고 있고, 나아가 같은 법 시행령은 업무수행 중의 사고, 사업장 내에서 천재지변 등으로 발생한 사고, 요양 중의 사고,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사고, 출퇴근 중의 사고, 업무상 질병 등(제27조부터 제36조까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경우를 한층 더 세밀하게 정하고 있다. 그런데 입법기술상 업무상 재해의 원인을 법령에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위 법 및 시행령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의 유형들은 예시적 규정이라고 보아야 하므로(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2두24214 판결 등 참조) 위 법 및 시행령에서 정한 유형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사용자의 지배 또는 관리 하에 이루어지는 당해 근로자의 업무수행 및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 과정에서 재해의 원인이 발생하였다는 이른바 업무수행성과 업무에 종사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사정, 즉 근로관계에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되었다는 이른바 업무기인성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는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라는 유형을 정하고 있고, 앞서 본 대로 업무상 재해로 인한 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병이 발생한 때에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이 또한 새로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야 한다.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2018. 12. 11. 대통령령 제293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2조는 업무상 재해를 치료하는 과정의 의료사고뿐만 아니라 요양 중인 산재보험 의료기관 내에서 업무상 질병의 요양과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까지도 업무상 재해의 유형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업무상 질병의 요양에 수반되는 위험을 고려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고의 발생장소가 요양 중인 산재보험 의료기관 내인지 여부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3호 나목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재해로 현실화된 위험이 업무수행 그 자체에 수반된 것이 아니라 그와 밀접한 생활관계에 수반된 것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면 업무상 재해의 요건인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고려할 근로관계에 수반되는 위험은 반드시 업무수행 그 자체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일단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 업무상 재해를 치료하는 과정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까지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
○ 망인은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1992. 6.경 이후 주거지 근처의 ◇◇◇병원에서 위 상병에 관하여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으며 요양하였고,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2018. 12. 7. 역시 ◇◇◇병원에서 위 상병에 관한 진료를 받았는데, 위 진료와 이 사건 사고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약 30분 정도에 지나지 아니하고, 이 사건 사고가 일어난 장소는 망인의 주거지에서 ◇◇◇병원을 오가는 통상적인 경로 위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이 업무상 재해를 치료받고자 요양 중인 산재보험 의료기관을 오가는 과정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서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