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다음날 새벽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해 출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더라도 회식과 출근 경위 등을 따져볼 때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사실관계
한 리조트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던 A씨는 입사 3개월차이던 2020년 6월 주방장의 제안으로 협력업체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A씨는 당일 오후 10시 50분경까지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오전 5시께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리조트로 출근을 하다 반대방향 차로 연석과 신호등을 잇따라 들이받는 사고로 결국 사망했다.
혈액감정 결과 당씨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이었다. 수사기관은 A씨가 운전하던 차량이 시속 약 15㎞의 속도로 교차로를 통과하다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B씨는 아들이 사망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청구했지만, 공단이 A씨가 출근 중 사고로 사망한 것은 맞지만, 음주운전 등 범죄행위로 사망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내용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 수석부장판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타인의 관여나 과실의 개입 없이 오로지 근로자가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법 위반행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위반행위와 업무관련성을 고려해야 한다.
B씨는 사고 전날 주방장의 제안과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음주를 하게 됐고, 채용된 지 약 70일이 지난 시점이라는 점에서 주방장과의 모임을 사실상 거절하거나 종료시각 등을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B씨는 다음날 근무시간이 시작된 오전 5시경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 출발했는데, B씨로서는 지각 시간을 줄여야 했고 이를 위해 과속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B씨의 과실로 발생했더라도, 출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고, B씨가 일한 주방에서의 지위, 음주·과속 운전 경위를 고려할 때 B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봄이 타당하다고 사망한 A씨의 아버지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3805)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2021. 5. 13. 선고 2020구합83805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사건】 2020구합83805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원고】
【피고】
【변론종결】 2021. 3. 25.
【판결선고】 2021. 5. 13.
【주문】
1. 피고가 2020. 8. 20.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는 2020. 3. 30.부터 리조트에서 조리사로 근무하였다. ○○○가 근무한 주방은 1명의 주방장(CHEF)과 2명의 계장(A-CHEF) 및 ○○○를 비롯한 5명의 조리사(COOK)로 구성되었다.
나. ○○○는 2020. 6. 9. 08:30부터 17:30까지 근무 후 주방장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협력업체 직원이 합석하여 22:50경까지 술을 마셨다.
다. ○○○의 2020. 6. 10. 근무시간은 05:00부터이고, 근무지까지는 거주지에서 약 15.6km 떨어져 있으며 운전하여 약 20분이 소요된다.
라. ○○○는 2020. 6. 10. 05:00경 출근하기 위해 승용차를 운전하여 출발하였고, 05:10경 충남 태안군 추동교차로의 근흥 방면 제한속도 시속 70km인 편도 3차로 도로(1차로는 좌회전 전용 차로이다)의 2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량이 반대방향 차로 연석, 신호등, 가로수를 연달아 충격하여(다음부터는 ‘이 사건 사고’라 한다), 05:19경 도로에 엎드린 채 맥박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의료기관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다음부터는 ○○○를 ‘고인’이라 한다).
마. 혈액감정결과 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였고, 수사기관은 고인의 차량이 시속 약 151km로 교차로를 통과하면서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분석하였다.
바. 피고는 2020. 8. 20. 고인의 아버지인 원고에게 ‘고인은 출근 중 이 사건 사고로 사망하였으나, 음주 및 과속운전에 따른 범죄행위로 사망하여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다음부터는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 6, 7호증, 을 제1, 2, 5 내지 8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산업재해보상보험법(다음부터는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 제2항(다음부터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앞서 본 사실 및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다음 각 사실 및 사정에 비추어 보면, 타인의 관여나 과실의 개입 없이 오로지 근로자가 형사책임을 부담하여야 하는 법 위반행위를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위반행위와 업무관련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 사건 사고가 오로지 고인의 과실로 발생하였다고 하여도 출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고인이 일한 주방에서의 지위, 음주·과속 운전 경위를 고려할 때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봄이 타당하다.
가.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나. 이 사건 법률조항이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등에 따른 사망 등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은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현실화가 아닌 업무 외적인 관계에 기인하는 행위 등을 업무상 재해에서 배제하려는 것으로, 우연성 결여로 보험사고성이 상실되거나 보험사고 자체의 위법성에 대한 징벌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행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이다(대법원 1990. 2. 9. 선고 89누2295 판결, 대법원 1995. 1. 24. 선고 94누8587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범죄행위’는 법문 상 병렬적으로 규정된 고의·자해행위에 준하는 행위로서 산재보험법과 산재보험수급권 제한사유의 입법취지에 따라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키고 재해의 직접 원인이 되는 행위로 해석·적용되어야 한다.
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일상생활에서 자동차 운전이 필수적으로 되었음을 고려하여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기 위하여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종합보험 등에 가입한 운전자에게 형사처벌의 특례를 부여하면서도 음주·과속 운전 등 일정한 사유에 관하여는 특례에서 배제하고 있다(제3조, 제4조).
이러한 특례배제에 따른 형사처벌은 이 특례법의 입법목적과 규율 취지에 따른 것으로 형사처벌의 대상, 즉 범죄행위가 된다고 하여 바로 업무관련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두5562 판결 참조), 그 입법목적과 규율취지를 달리 하는 산재보험법과 이 사건 법률조항의 ‘범죄행위’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할 수도 없다.
라. 고인은 이 사건 사고 전날 주방장의 제안과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22:50경까지 음주를 하게 되었다. 채용된 지 약 70일이 지난 조리사인 고인이 주방장과의 모임을 사실상 거절하거나 종료시각 등을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인은 이 사건 사고일인 2020. 6. 10. 근무시간이 시작된 05:00경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 출발하였다.
고인으로서는 지각시간을 줄여야 했고 이를 위해서 과속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사고는 자동차를 이용한 통상적인 출근경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자동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는데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 된 것이고, 이 사건 전날 음주나 과속이 사고의 우연성을 결여시켰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음주·과속 운전에 따른 사고에 관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른 징벌에서 나아가 업무상 재해성을 부정하여 산재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부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