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받고 만들어 준 은행 예금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면 예금통장 명의자에게도 범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할 책임이 있다.
최근 급증하는 이른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예견하면서도 자신명의의 수개의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타인에게 교부한 사람에 대하여 단순히 예금명의자라 할지라도 공동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기망당한 피해자의 과실이 참작되어야 한다는 예금명의자의 주장을 배척한 판결
사실관계
공씨 등은 지난 2006년10월께 선배인 이모씨로부터 '사업을 하려는데 나는 신용불량자이고 주민등록이 말소돼 예금통장을 만들지 못하므로 통장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각각 4개씩 8개의 예금통장을 만들어 이씨에게 건네 보이스 피싱에 사용되게 한 혐의다.
판결내용
인천지법 민사3부(재판장 이우재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민법상 불법행위는 형법과 달리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고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의 방조도 가능하다. 피고들도 자신이 아는 선배의 부탁으로 예금계좌만을 만들어 줬을 뿐이고 이를 보이스 피싱에 사용하는 줄 몰랐다고 해도 8개나 되는 계좌를 개설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례적이다.
구체적인 공모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예금계좌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피고들이 예금통장을 만들어 교부함으로써 금원편취행위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 이는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 신씨가 사기를 당했던 시기는 '전화사기' 범행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던 점, 기망기법도 국세청 직원이라고 사칭해 통상의 일반인이 쉽게 허위임을 알기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고려, '원고에게 과실있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를 본 신모씨가 계좌 명의인인 공모씨와 최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인천지방법원 2007나15370)에서 피고 공씨와 최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4,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인천지방법원 2008. 4. 8. 선고 2007나15370 판결 손해배상
【원고, 피항소인】 신○○
【피고, 항소인】 1. 공○○
2. 최○○
【제1심판결】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07. 10. 24. 선고 2006가단49965 판결
【변 론 종 결】 2008. 3. 18.
【판 결 선 고】 2008. 4. 8.
【주 문】
1. 피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한다.
【청 구 취 지】
피고들은 각자 원고에게 45,535,800원 및 이에 대하여 2006. 10. 17.부터 다 갚는 날까
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항 소 취 지】
제1심 판결 중 피고들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각 기각한다.
【이 유】
1. 기초사실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 갑 제1호증의 1 내지 갑 제10호증의 2, 을 제1, 2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가 2006. 10. 16. 국세청 직원이라 사칭하는 성명불상자로부터 환급할 세금을 원고의 예금통장에 입금될 수 있도록 자신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현금인출기 조작하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고 이에 기망당하여, 우리은행을 방문하여 성명불상자가 전화로 시키는 대로 9차례에 걸쳐 현금인출기의 숫자번호를 누르자,
원고의 은행계좌에서 피고 공○○ 명의의 예금계좌로 합계 38,358,800원(송금수수료 포함), 피고 최○○ 명의의 예금계좌로 3,589,700원(송금수수료 포함)이 송금된 사실, 그런데 위와 같이 송금된 예금계좌는 피고들이 선배인 이○○으로부터 작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신용불량자이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여서 예금통장을 만들지 못하므로 최대한 많은 예금통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피고들은 2006. 10. 11.경 각 4개씩 합계 8개의 예금통장을 만들어 이○○에게 건네준 예금계좌 중 일부였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2. 당사자의 주장 및 판단
가. 당사자의 주장
① 원고는, 피고들이 이○○과 공모하여 피고들 명의의 각 예금통장을 만들어 교부하여, 이○○으로 하여금 위 예금통장을 이용하여 원고의 금원을 편취하게 함으로써 원고에게 손해를 가하였음을 이유로 피고들에게 그 손해의 배상을 구하고,
② 피고들은, 피고들이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가 피고들에게 사업상 자금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신용불량자라서 자신 명의로 예금거래를 할 수 없다면서 피고들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해 달라고 하여, 단지 사업상 필요한 자금거래를 하는데 사용할 것으로만 알고 피고들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주었을 뿐 이른바 전화사기와 같은 범죄에 사용되리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였으므로 피고들이 원고에게 이 사건 금원을 지급할 의무는 없고, 설령 피고들에게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아무런 확인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국세청직원을 사칭하는 자에게 경솔하게 기망당하여 피해를 입은 이상, 원고의 과실이 상당부분 참작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나. 판단
⑴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민법 제760조 제3항은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하여 교사자나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는바, 방조라 함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작위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작위의무 있는 자가 그것을 방지하여야 할 제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로 인하여 불법행위자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도 포함하고, 형법과 달리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법의 해석으로서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의 방조도 가능할 것이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이 의무에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인데(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5다55299 판결 등 참조),
위 인정사실과 함께, 통상 사업상 예금계좌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위와 같이 8개나 되는 예금계좌를 개설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례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탁을 한 이○○이 신용불량자이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던 점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은 이○○ 등과 사이에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공모를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아니하였다면 그들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부정한 방법으로 위 각 예금계좌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피고들이 이○○에게 위 각 예금통장을 만들어 교부함으로써 그들이 이를 이용하여 위와 같은 금원편취행위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서, 이는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피고들은 이○○ 등과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⑵ 책임제한 여부
다음으로, 피고들의 과실상계 주장에 대하여 보건대, 위 인정사실과 갑 제3호증, 갑 제10호증의 1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원고가 기망당한 2006. 10. 16.경은 이 사건 범행과 같은 이른바 ‘전화사기’ 범행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던 점, 그 기망방법에 있어서도 국세청직원이라고 사칭하는 성명불상자가 원고로 하여금 국세 환급금액 589,000원의 앞에 국세청 고유코드 3 혹은 9를 누르게 하고(그리하여 결과적으로 3,589,000원, 9,589,000원이 피고들 명의의 계좌에 송금되게 하였다), 오류가 생겼다는 이유로 반복하게 누르게 하는 등 통상의 일반인이 쉽게 허위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의 연령 및 경력 등에 비추어 피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원고가 국세청직원을 사칭하는 자에게 기망당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에게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들의 이 사건 과실상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결 론
그렇다면, 피고들은 각자 원고에게 위 편취금액 45,535,8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 다음날인 2006. 10. 17.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인 2006. 12. 21.까지는 민법이 정하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하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들의 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