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2일 A씨는 자신의 아들과 교제중이던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B씨를 살해했다. 평소 B씨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A씨는 이날 B씨와 전화로 말다툼을 하다 B씨가 집 앞으로 찾아가겠다고 하자 흉기를 들고 나갔다.
어머니인 B씨가 집 부엌에서 과도를 챙겨 나가는 것을 본 B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다며 112에 두 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근처에 일어난 가정폭력 사건 신고와 A씨의 아들이 신고한 사건이 동일 사건이라고 착각해 현장으로 향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용산경찰서 상황실은 순찰 경관에게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있다는데 칼을 확인했느냐고 묻자 순찰 경관들은 여기 아들이 좀 정상이 아닙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조금씩 술에 취했습니다라며 엉뚱한 답을 하기도 했다.
순찰 경관들은 첫 신고가 접수되고 20여분이 훌쩍 넘은 뒤에야 두 신고가 서로 다른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지만 B씨는 이미 A씨에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뒤였다.
판결내용
서울서부지법 민사22단독 황병헌 판사는 판결문에서 A씨의 아들이 한 신고와 근처에서 발생한 가정폭력사건은 신고의 내용과 주소가 명확히 달랐고, 112종합상황실에서 이를 지적하며 동일건인지 거듭 확인을 요청했음에도 담당 순찰 경관은 신고후 24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는 경찰공무원이 과실로 현저하게 불합리게 공무를 처리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신고내용이 구체적이었고 A씨가 나이가 많은 여성이어서 경찰이 살인사건 전에만 현장에 도착했다면 사건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살인사건과 직무상 의무 위반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다만 경찰관들이 A씨의 범행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착오로 막지 못한 것이고, B씨가 흥분한 A씨를 일부러 찾아와 싸운 점 등을 고려해 국가의 책임을 20%로 제한, B씨의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서울서부지방법원 2016가단2348)에서 국가는 83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16. 6. 17., 선고, 2016가단2348, 판결 손해배상(기)
【원 고】
【피 고】대한민국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희창)
【변론종결】2016. 5. 27.
【주 문】
1.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5,956,673원, 원고 3, 원고 4에게 각 35,820,225원과 이에 대하여 2015. 9. 12.부터 2016. 6. 17.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원고와 피고들이 50%씩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11,435,099원, 원고 3, 원고 4에게 각 73,730,337원과 이에 대하여 2015. 9. 12.부터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 유】
1.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가. 인정 사실
1) 원고 1, 원고 2는 사망한 소외 1의 부모이고, 원고 3, 원고 4는 소외 1의 자녀들이다.
2) 소외 1은 소외 2의 아들인 소외 3과 교제하였다. 소외 2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2015. 9. 9. 소외 1이 술에 취해 집으로 찾아와 욕설을 하고 소란을 피운 일로 소외 1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3) 소외 2는 2015. 9. 12. 19:33경 자신의 집에서 소외 1과 통화하면서 소외 1에게 심한 욕설을 하였는데, 이에 격분한 소외 1이 “내가 거기가면 너 가만히 안 놔둔다.”고 하면서 소외 2의 집으로 당장 오겠다고 하자 부엌에 있던 과도를 미리 준비하고 소외 1이 오기를 기다렸다. 소외 2와 소외 3의 집은 서울 용산구 (주소 1 생략), ○○△호이다.
4) 소외 2와 함께 있던 소외 3은 소외 2가 과도를 들고 소외 1을 기다리자 21:12:11 휴대전화로 112신고를 하여 경찰관 출동을 요청하였고, 신고 후 한참이 지나도 경찰관이 오지 않자 21:27:22 다시 112에 전화를 걸어 경찰관의 출동을 독촉하였다.
5) 소외 2는 21:40경 집 근처인 서울 용산구 (주소 2 생략)에 있는 □□부동산 앞길에서 소외 3과 함께 있는 소외 1을 발견하고 달려들어 과도로 소외 1의 명치 부분을 찔러 소외 1을 흉부자창으로 사망하게 하였다.
6) 소외 3이 미리 112 신고를 하였음에도 경찰관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소외 3의 신고로부터 경찰관의 출동까지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① 21:12:11 서울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주소 1 생략)에서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전화로 싸운 후 여자친구가 집으로 오고 있는데,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죽이겠다며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폭력신고(소외 3의 최초 신고이다. 이하 이 사건 신고라고 한다)가 접수되었다. 서울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 담당자는 소외 3에게 “여자친구를 말리고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안내하였다. 그 후 21:12:28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은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이 사건 신고를 하달 받아 한남파출소에 순찰차 지정을 요청하였다.
② 한편 앞서 21:02:09 (주소 3 생략)에서 “가족 싸움이 있다.”는 내용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어, 이를 하달 받은 한남파출소 소속 순찰차 42호, 43호는 그 현장으로 출동한 상태였는데, 이 사건 신고에 관한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의 지령을 받은 한남파출소 상황근무자는 폴맵(Pol Map)을 보고 사건 신고가 앞선 가정폭력 신고 건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하고 21:12:39 “가정폭력 건과 동일 건 같아요.”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장자는 21:13:19 순찰차 42, 43호에게 이 사건 신고와 가정폭력 신고의 발생장소가 다르므로 동일 사건 여부를 면밀히 조사할 것을 지령하였고, 다시 21:19:57 순찰차 43호에게 이 사건 신고와 가정폭력 신고가 동일 사건이 맞는지 여부를 질문하였다.
③ 그러던 중 소외 3이 21:27:22 다시 경찰관 출동을 독촉하는 112 신고를 하여 서울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접수되었다.
④ 21:28:32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는 순찰차 42호에게 이 사건 신고와 가정폭력 신고가 별건인 것 같으니, 이 사건 신고 현장인 (주소 1 생략), ○○△호로 출동할 것을 지령하였다. 그런데 21:29:30 순찰차 42호의 경찰관은 가정폭력 신고의 신고자가 사는 방문에 △호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에 “신고가 ○○△호면 동일 건입니다.
지금 ○○△호입니다. 지금 주소 확인했습니다.”라고 보고하였고,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가 “칼이 확인되시나요?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고 재신고 되었는데요. 아울러 신고자가 남자인데 그 아들이 신고한 상황이고, 아들이 현장에 있나요?”라고 재차 묻자, “여기 아들이 좀 정상이 아닙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조금씩 술에 취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⑤ 그러다가 순찰차 42호 경찰관은 21:36:42 비로소 순찰차 네비게이션을 통해 이 사건 신고와 가정폭력 신고가 별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무전으로 보고하였고, 순찰차 43호가 21:40:49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사건이 발생한 후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1 내지 3, 갑 2-1, 2, 을 1 내지 3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소외 3은 (주소 1 생략)에서 소외 2가 칼을 가지고 소외 1을 죽이겠다며 기다리고 있다는 이 사건 신고를 하였고, 그 신고 내용이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을 거쳐 하달되었음에도, 한남파출소 상황근무자는 단지 신고지점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신고가 앞선 가정폭력 신고 건과 동일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가 두 건의 발생장소가 다르다는 점, 칼을 가지고 있다는 신고가 된 점을 지적하면서 두 사건이 동일 건인지 확인하고, 칼의 존재를 확인하라고까지 거듭 요청하였음에도,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 도착한 순찰차 42호의 경찰관은 신고자가 사는 방문에 △호라고 기재된 것을 보고 두 건을 동일 건으로 판단하고 보고하였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신고가 이루어진 때로부터 24분이 지난 21:36:42까지 경찰관들은 이 사건 신고를 기존 가정폭력 신고와 동일한 사건으로 보고 살인사건에 대한 아무런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사건 신고와 앞선 가정폭력 신고의 발생 장소 등에 있어 두 사건을 동일한 건으로 오인할 만한 요소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신고 내용과 주소가 명확히 다르고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가 이를 지적하면서 거듭 동일 건인지 확인을 요청까지 한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신고를 기존 신고 건과 동일한 것으로 오인하여 24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피고 소속의 경찰공무원이 과실로 인하여 현저하게 불합리하게 공무를 처리함으로써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사건 신고가 가정폭력 신고와 다른 것임을 파악하지 못한 시간이 24분에 달하는 점, 이 사건 신고가 별개의 건임을 깨달은 후에는 불과 몇 분 후에 경찰관이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한 점, 소외 3이 소외 2가 칼을 가지고 소외 1을 죽이려고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신고를 하였고, 소외 2가 나이 많은 여성이어서 경찰관이 살인사건 발생 전에만 현장에 도착하였다면 사건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직무상의 의무위반과 살인사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도 인정된다.
피고는, 소외 1이 소외 2를 자극하고 소외 2를 일부러 찾아와 싸우다가 살해당하였으므로 이는 소외 1이 자초한 위난으로 피고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소외 1이 위와 같이 소외 2를 일부러 찾아와 싸웠다는 사정만으로 살인사건을 자초한 것이어서 피고에게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다만 이는 책임의 제한과 위자료 산정에 반영하기로 한다). 피고는 이로 인하여 살인 사건 발생의 예견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은 소외 3의 신고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외 1이 피하지 않고 덤벼들었다는 사정만으로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다. 책임의 제한
피고의 경찰공무원들은 소외 2의 범행에 가담하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이 아니고 소외 2에 대하여 일반적인 감독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단지 소외 2의 범행 가능성을 미리 신고 받고도 착오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여 범행을 막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아울러 소외 1이 흥분한 소외 2와 싸우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점, 소외 3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미리 나가 소외 1을 말렸음에도 소외 1이 소외 2와 싸우다가 칼에 찔린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의 책임 비율을 20%로 제한한다.
2.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재산상 손해
1) 일실소득
소외 1이 상실한 가동능력에 대한 금전적 총평가액 상당의 일실수입 손해는 아래와 같은 인정 사실 및 평가내용을 기초로 하여 월 5/12%의 비율에 의한 중간이자를 공제하는 단리할인법에 따라 살인사건 당시의 현가로 계산한 258,202,250원이다.
① 인정 사실 및 평가내용
- 성별: 여자 / 생년월일: (생년월일 생략) / 연령: 사망 당시 34세 6개월 남짓 / 기대여명: 52.16년
- 가동능력에 대한 금전적 평가 : 2015년 하반기 도시일용노동 노임 1일 89,566원
- 생계비 : 수입의 1/3
- 가동연한 : 60세가 될 때까지 월 22일씩 노동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1의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② 계산
- 2015. 9. 12.부터 2041. 3. 10.까지 305개월
- 89,566원×22일×2/3×196.5557=258,202,250원
2) 장례비 등
원고 1, 원고 2가 병원비와 장례비로 합계 9,566,730원 지출(갑 6-1 내지 4)
원고 1, 원고 2 각 4,783,365원씩 지출한 것으로 본다.
나. 위자료
살인사건의 발생경위, 원고들의 신분관계, 그 밖에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 금액을 망 소외 1 10,000,000원, 원고 1, 원고 2, 원고 3, 원고 4 각 5,000,000원으로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