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손님이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가기 위해 손잡이가 설치되지 않은 비좁은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다쳤더라도 노래방 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사실관계
전모씨는 2014년 3월 지인들과 밤 11시경 서울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노래방을 찾았다. 이 노래방은 이모씨가 건물주로부터 임차해 운영하고 있었다. 노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폭이 82㎝ 정도였고, 높이 20㎝, 너비 24㎝ 정도인 10개의 단으로 이뤄져 있었다. 양쪽 면은 벽으로 막혀 있는 폐쇄형 구조였고 벽면에 손잡이가 설치돼 있지는 않았다.
전씨는 이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과 우측 편마비, 인지기능 저하 등의 큰 상해를 입었다.
이에 전씨는 이씨를 상대로 계단에 손잡이가 설치돼 있지 않은 하자가 있으니 치료비와 보조구 비용, 개호비, 일실손해액, 위자료 등으로 8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고 이후 이씨는 계단 한쪽 벽면에 손잡이를 설치했다.
판결내용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이상현 부장판사)는 민법 제758조가 말하는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는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전성 구비 여부 판단 시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그 의무를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시설이 관계 법령이 정한 시설기준에 부적합한 것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공작물점유자는 사고 방지를 위해 공작물을 보수·관리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를 말한다.
구 건축법 시행규칙은 난간이 없는 경우 손잡이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사고가 발생한 계단에 당시 손잡이가 설치돼 있지 않았지만, 건축법상 법령의 규정에 적합하게 시설물을 유지·관리할 의무는 건축물의 소유자나 관리자에게 있다.
이씨는 지하층만 임차했을 뿐인데다 건물 외부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이 사건 계단은 건물의 공용부문에 해당하고, 이씨가 건물주에게 관리비 명목으로 월 2만원씩 입금해준 점 등으로 보아 이 계단은 이씨가 임차한 부분에 직접 포함되지 않아 이씨에게 계단을 유지·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건물 사용 승인을 받은 1991년 12월 시행됐던 구 건축법 시행령에 의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한 계단처럼 양쪽이 벽으로 막혀있는 경우에는 난간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계단의 단높이나 단너비가 당시 규정에 위반돼 시공된 것도 아니뿐만 아니라 계단의 경사도도 다소 급한편이나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았다.
이씨는 계단 위와 맨 아래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두고 단 끝마다 미끄럼 방지장치를 부착하는 등 사고방지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고 사고 당시 계단이 어두웠다거나 관리소홀로 인해 특별히 미끄러웠던 사정도 없다고 전씨가 이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71041)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8. 23. 선고 2017가합571041 판결 손해배상(기)
【원고】 A
【피고】 B
【변론종결】 2018. 6. 28.
【판결선고】 2018. 8. 23.
【주 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803,651,903원 및 이에 대하여 2014. 3. 15.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2012. 4. 30.경 소외 C으로부터 서울 용산구 D 지상 건물(지하1층, 지상 5층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 이하 '이 사건 건물'이라 한다) 중 지하 1층 점포를 임차보증금 2,200만 원, 월세 45만 원에 임차하여 'E'이라는 상호로 노래방(이하 '이 사건 노래방'이라 한다)을 운영하고 있다.
나. 원고는 2014. 3. 14. 22:45경 술을 마신 상태에서 지인들과 이 사건 노래방에 가기 위해 이 사건 건물의 지하1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하 '이 사건 계단'이라 한다)을 통하여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뎌 8개 단 아래인 지하1층으로 떨어졌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이로 인하여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우측 편마비, 인지기능저하 등의 상해를 입었다.
다. 이 사건 계단은 폭 82cm, 단높이 20cm, 단너비 24cm 정도의 10개 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쪽 면이 벽으로 막혀있으며 사고 당시 벽면에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편, 이 사건 사고 이후 피고는 이 사건 계단 한쪽 벽면에 손잡이를 설치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4, 5, 7 내지 11, 13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의 주장
이 사건 계단에는 손잡이가 설치되지 아니한 하자가 있으므로, 이 사건 계단의 점유자인 피고는 민법 제758조에 따라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기왕치료비 835,690원, 향후 치료비 및 보조구 비용 90,283,826원, 개호비 490,528,485원, 일실손해액 182,003,902원, 위자료 40,000,000원 합계 803,651,903원(= 835,690원 + 90,283,826원 + 490,528,485원 + 182,003,902원 + 40,000,000원) 및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나. 피고의 주장
이 사건 계단은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설치보존상 하자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건물의 소유자인 C이 이 사건 계단을 설치 및 보수 · 관리할 책임을 부담하므로 피고는 손해배상책임이 없다.
가사, 피고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만취하여 전방주시의무를 태만하여 발생한 것으로 이로 인하여 손해가 크게 확대되었으므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원고의 과실이 참작되어야 하고, 원고는 피고가 가입한 소외동부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의 영업배상책임보험에 따른 보험금 1,000만 원을 이미 지급받았으므로 위 금액은 원고의 청구금액에서 공제되어야 한다.
3. 판단
가. 민법 제758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라 함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공작물의 설치·보존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그 시설이 관계 법령이 정한 시설기준 등에 부적합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사유는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8다61615 판결 참조), 민법 제758조 제1항 소정의 공작물점유자라 함은 공작물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그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공작물을 보수·관리할 권한 및 책임이 있는 자를 말한다(대법원 2000. 4. 21. 선고 2000다386 판결,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23741 판결 등 참조).
나. 위 법리에 비추어 보건대, 앞서 든 각 증거와 을 제1, 6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및 영상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고 당시 이 사건 계단에 손잡이가 설치되지 아니하여 공작물의 설치 · 보존상의 하자가 있었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피고가 민법 제758조 제1항 소정의 공작물점유자에 해당하여 그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① 이 사건 건물이 사용승인을 받은 1991. 12. 13.경 시행되던 구 건축법 시행령(1991. 12. 17. 법률 제1351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1조 제2항(계단 중 높이 1미터를 넘는 것은 그 계단 및 계단참의 양측에 벽 또는 이에 대치되는 것이 없는 경우에는 난간을 설치하여야 한다.)에 의하면, 이 사건 계단은 계단 양쪽이 (합판으로 이루어진)벽으로 막혀 있어 난간을 설치할 필요는 없고, 계단의 단높이나 단너비가 당시 규정에 위반되어 시공된 것은 아니며, 계단의 경사도 또한 다소 급한 편이나 관련 규정에 어긋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② 이 사건 사고 당시 시행중이던 구 건축법 시행규칙(1992. 6. 1. 부령 제50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17조 제3항[각주:1]에서 난간이 없는 경우에는 손잡이를 설치하여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계단에는 당시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건축법상 건축물을 법령의 규정에 적합하도록 유지관리하여야 할 의무는 건축물의 소유자나 관리자에게 있는바, 피고는 이 사건 건물의 지하층만을 임차하였을 뿐이고, 이 사건 건물 외부에서 지하층으로 연결되는 이 사건 계단은 이 사건 건물의 공용부분에 해당하는 점, 피고가 이 사건 건물 소유자인 C에게 월 임료 이외에 건물 관리비 명목으로 월 2만 원씩을 입금해 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건물 외부에서 지하층으로 연결되는 이 사건 계단은 피고의 임차 부분에 직접 포함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계단을 주로 피고와 노래방 이용객이 이용한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에게 이 사건 계단을 법령의 규정에 적합하도록 유지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③ 피고는 이 사건 계단 위와 맨 아래 바닥 부분에 미끄럼방지매트를 놓아두고 각 단 끝 부분마다 미끄럼 방지장치를 부착하는 등 일응 사고방지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고, 당시 이 사건 계단이 어두웠다거나 관리소홀로 인하여 특별히 미끄러웠다는 등의 사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원고는 이 사건 노래방을 몇 차례 이용하여 이 사건 계단의 구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발아래 부분을 살피지 않고 발을 내딛다가 두 번째 계단을 건너뛰고 세 번째 계단으로 발을 헛디디면서 그만 몸의 중심을 잃고 8개 단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발생한 것으로, 이와 유사한 낙상 사고가 이 사건 사고 이전에도 있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다.
다. 따라서 피고에게 공작물의 점유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이상현
판사 조용희
판사 구준모
[각주1] 제17조(계단의 구조) ③공동주택·근린생활시설종교시살노유자시살의료시살업무시살숙박시살판매시설위락시설관람집회시살전시시설운수시살관광휴게시설의 용도에 쓰이는 건축물의 주계단·피난계단 또는 특별피난계단에 설치하는 난간은 아동의이용에 안전하고 노약자 또는 신체장애자의 이용에 편리한 구조로 하여야 하며, 양측에 벽 등이 있어 난간이 없는 경우에는손잡이를 설치하여야 한다.[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