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험자 행세를 하며 단지 피보험자 명의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는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
사실관계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40대 여성 김모씨는 2003년 3월 내연관계에 있던 한 사찰의 주지승 박모씨로부터 보험사기 가담 제안을 받았다. 박씨가 부인인 조모씨 명의로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금을 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김씨에게 조씨 행세를 하며 보험계약을 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김씨는 한달 뒤 조씨 행세를 하며 3개 보험사와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조씨로 하는 보험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6개월 뒤 박씨의 부인은 박씨가 주지승으로 있던 사찰의 행자승에게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고, 박씨는 살인과 사체를 유기하도록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특수절도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행자승 김모씨는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박씨는 아내의 사망으로 인한 보험금 8억여원을 수령했지만, 상황을 의심한 보험회사에 의해 김씨가 박씨의 아내 행세를 해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고 보험사기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박씨는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김씨였다. 검찰은 김씨가 박씨의 보험사기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해 기소했다. 1·2심은 김씨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보험계약자 본인 행세를 한 것은 계약의 효력을 좌우하는 본질적인 중요 부분을 속인 것이므로 사기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판결내용
대법원 형사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제3자가 피보험자인 것처럼 가장해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숨겼다거나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와 같이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칠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이 하자 있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만으로는 기망행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보험회사를 속여 보험금을 지급받은 행위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박씨가 보험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 것처럼 속여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한 때에 실행의 착수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또 김씨가 보험계약 체결 과정에서 피보험자인 조씨를 가장하는 등으로 박씨를 도운 행위는 사기 범행을 위한 예비행위에 대한 방조의 여지가 있을 뿐이고, 보험계약 체결 단계에서 방조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김씨를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김씨(변호인 법무법인 케이씨엘)에 대한 상고심(대법원 2013도7494)에서 유죄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보험사기의 공범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013.11.14, 선고, 2013도7494, 판결 사기
【판시사항】
[1]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제3자가 피보험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체결하는 등으로 그 유효요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경우,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만으로 보험금 편취를 위한 기망행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2] 정범의 실행의 착수 이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방조한 경우, 종범이 성립하는지 여부(한정 적극)
【판결요지】
[1]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제3자가 피보험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체결하는 등으로 그 유효요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경우에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숨겼다거나 보험사고의 구체적 발생 가능성을 예견할 만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던 경우 또는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와 같이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칠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이 하자 있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만으로는 미필적으로라도 보험금을 편취하려는 의사에 의한 기망행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기망행위의 실행의 착수로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 피보험자 본인임을 가장하는 등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는 단지 장차의 보험금 편취를 위한 예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2] 종범은 정범이 실행행위에 착수하여 범행을 하는 과정에서 이를 방조한 경우뿐 아니라, 정범의 실행의 착수 이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미필적으로나마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방조한 경우에도 그 후 정범이 실행행위에 나아갔다면 성립할 수 있다.
【참조조문】
[1] 형법 제347조, 상법 제730조, 제731조
[2] 형법 제32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도6910 판결 / [2] 대법원 1983. 3. 8. 선고 82도2873 판결(공1983, 680), 대법원 1996. 9. 6. 선고 95도2551 판결(공1996하, 3069),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7 전원합의체 판결(공1997상, 1354)
【피 고 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케이씨엘 담당변호사 최종길 외 4인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법 2013. 6. 13. 선고 2013노489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제3자가 피보험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체결하는 등으로 그 유효요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경우에도, 그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숨겼다거나 보험사고의 구체적 발생 가능성을 예견할 만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던 경우 또는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와 같이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칠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이 하자 있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만으로는 미필적으로라도 보험금을 편취하려는 의사에 의한 기망행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도6910 판결 참조). 그러므로 그와 같이 기망행위의 실행의 착수로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 피보험자 본인임을 가장하는 등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행위는 단지 장차의 보험금 편취를 위한 예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한편 종범은 정범이 실행행위에 착수하여 범행을 하는 과정에서 이를 방조한 경우뿐 아니라 정범의 실행의 착수 이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미필적으로나마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방조한 경우에도 그 후 정범이 실행행위에 나아갔다면 성립할 수 있다(대법원 1983. 3. 8. 선고 82도2873 판결, 대법원 1996. 9. 6. 선고 95도2551 판결 등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 사건의 쟁점은 공소외 1이 사망한 후 공소외 2가 신한생명보험 주식회사 등 3곳의 보험회사에 대하여 보험금 청구를 하면서 공소외 1 명의로 체결된 계약에 법률상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이 공소외 2와 공모하여 보험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청구하였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유효한 보험계약에 기하여 보험금 청구를 하는 것인 양 보험회사들을 기망하여 8억 원을 편취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공모하였는지 여부라고 전제한 다음, 피고인이 피보험자인 공소외 1인 것처럼 가장하여 보험금수익자를 공소외 2로 하여 3개 보험회사와 공소외 1 명의로 각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피고인과 공소외 2는 공모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보험금 편취의 사기 범행을 저지른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을 살펴보아도, 피고인이 원심 판시와 같이 피보험자인 공소외 1 본인인 것처럼 가장하여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데 관여한 사실은 알 수 있지만, 나아가 그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공소외 1이 재해 등 자연사가 아닌 사유로 사망할 가능성을 예견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거나 공범인 공소외 2가 보험사고를 임의로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면서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등 피고인의 보험계약 체결행위 자체로 보험사고의 우연성 등 보험의 본질을 해칠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다.
또한 그 후 공소외 1이 살해되고 나서 공소외 2가 위 각 보험계약이 마치 유효하게 체결된 것처럼 보험회사들을 기망하여 보험금을 청구할 때에 피고인이 그에 가담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보험회사를 기망하여 보험금을 지급받은 편취행위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소외 2가 위 각 보험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 것처럼 기망하여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한 때에 실행의 착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피고인이 그 보험계약의 체결 과정에서 피보험자인 공소외 1을 가장하는 등으로 공소외 2를 도운 행위는 그 사기 범행을 위한 예비행위에 대한 방조의 여지가 있을 뿐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그 후 공소외 2가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여 이를 지급받음으로써 정범으로서의 실행행위에 나아감에 따라 그에 대한 방조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밖에 피고인이 공소외 2의 위 사기 범행에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하여 가담하였다는 다른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위 보험계약 체결 단계에서 방조행위를 하였다는 것만으로 피고인을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89. 4. 11. 선고 88도1247 판결 참조).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위 각 보험계약의 체결행위에 가담한 것만으로도 공소외 2의 사기 범행에 관하여 공동정범이 성립한다고 판단하였으니, 거기에는 공동정범의 주관적 요건인 공동가공의 의사와 사기죄에 있어서 실행의 착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이에 피고인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