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성폭행 피해자 모욕하고 공개장소에서 범인 지목하게 한 행위는 인권보호규정 위반,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하라
요지
경찰이 성폭행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모욕하고 범인을 공개지목하도록 한 행위 등에 대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하라.
사실관계
2004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A양 자매는 박모군 등 밀양지역 고교생 40여명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하거나 금품을 빼앗겨 울산남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 조사과정에서 경찰로부터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는 등의 말을 듣고 또 기자들에게 실명이 기재된 사건 관련 문서가 유출되자 어머니와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또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범인식별실이 따로 있는데도 형사과사무실에서 피의자 41명을 세워놓고 A양 자매에게 범인을 지목하도록 시켜 인권을 침해한 것도 문제 삼았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누설한 점만 유죄로 인정해 "국가는 A양 자매에게 각각 700만원과 300만원, 어머니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모욕적인 발언이 경찰 직무집행 과정에서 나왔고,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의 보호가 절실했음에도 피의자들과 대면한 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하게 한 것은 피해자 인권보호를 규정한 경찰관직무규칙 위반행위"라며 배상액을 3,000만∼1,000만원으로 늘렸다.
판결내용
대법원 민사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경찰이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고 공개된 장소에서 피의자를 지목하도록 한 것은 직무상 의무를 소홀히 해 원고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한 행위로서 '수사편의'라는 동기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또 성폭행 수사 경찰관이 아닌 경찰서 감식실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그 곳에 대기하던 A양 자매에게 한 모욕적인 발언을 직무집행 행위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로 봐 국가가 배상토록 한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경남밀양에서 발생한 집단성폭행사건의 피해자 A양 자매와 어머니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대법원 2007다64365)에서 "A양 자매에게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 어머니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7다64365 판결 손해배상(기)
【판시사항】
[1] 국가배상책임에 있어서 ‘법령 위반’의 의미 및 경찰관이 범죄수사를 하면서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한계를 위반한 것이 ‘법령 위반’인지 여부(적극)
[2] 어린 학생이 피해자인 성폭력범죄를 수사하는 경찰관에게 수사과정에서 또 다른 심리적·신체적 고통으로 가중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는지 여부(적극)
[3] 성폭력범죄의 담당 경찰관이 경찰서에 설치되어 있는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고 공개된 장소인 형사과 사무실에서 피의자들을 한꺼번에 세워 놓고 나이 어린 학생인 피해자에게 범인을 지목하도록 한 행위가 국가배상법상의 ‘법령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4] 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정한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의 의미
[5] 성폭력범죄의 수사를 담당하거나 수사에 관여하는 경찰관이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을 공개 또는 누설함으로써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국가의 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적극)
【참조조문】
[1]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 [2]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 [3]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 [4]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 [5]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21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05. 6. 9. 선고 2005다8774 판결 / [4] 대법원 1995. 4. 21. 선고 93다14240 판결(공1995상, 1931), 대법원 2001. 1. 5. 선고 98다39060 판결(공2001상, 417) 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4다26805 판결(공2005상, 283) / [5] 1998. 9. 22. 선고 98다2631 판결(공1998하, 2545),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1다59842 판결(공2003상, 1245), 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5다62747 판결(공2008상, 112)
【원고, 피상고인】원고 1외 2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병군)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7. 8. 16. 선고 2006나108918 판결
【주 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본다.
1. 범인식별실 불사용 부분에 관하여
가. 국가배상책임에 있어 공무원의 가해행위는 법령을 위반한 것이어야 하고, 법령을 위반하였다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뿐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아니하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경찰관이 범죄수사를 함에 있어 경찰관으로서 의당 지켜야 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한계를 위반하였다면 이는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05. 6. 9. 선고 2005다8774 판결 등 참조).
나. 경찰관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범죄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의무가 있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나이 어린 학생인 경우에는 수사과정에서 또 다른 심리적·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가중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배려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
그런데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성폭력범죄의 담당 경찰관은 그 경찰서에 설치되어 있는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은 채 공개된 장소인 형사과 사무실에서 피의자 41명을 한꺼번에 세워 놓고 피해자인 원고 1, 원고 2로 하여금 범행일시와 장소 별로 범인을 지목하게 하였다는 것인바, 경찰관의 이와 같은 행위는 위에서 본 직무상 의무를 소홀히 하여 위 원고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행위로서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한계를 위반한 것임이 분명하고, 수사상의 편의라는 동기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달리 위 행위가 부득이한 것으로서 정당하다고 볼 만한 사유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경찰관의 위와 같은 행위가 국가배상법이 정하는 법령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없다.
2. 감식실에서의 모욕, 비하 발언 부분에 관하여
구 국가배상법(2008. 3. 14. 법률 제88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의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라 함은 직접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를 말하고,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행위 자체의 외관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보여질 때에는 비록 그것이 실질적으로 직무행위가 아니거나 또는 행위자로서는 주관적으로 공무집행의 의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 ( 대법원 1995. 4. 21. 선고 93다14240 판결, 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4다26805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경찰서 감식실의 근무 경찰관이 그곳에서 대기하던 원고 1, 원고 2에게 그 판시와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경찰관의 위와 같은 행위는 외관상 객관적으로 보아 직무집행행위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고, 거기에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없다.
3. 피해사실 및 인적사항 누설 부분에 관하여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추상적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구체적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라면, 공무원이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개인이 입게 된 손해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국가가 그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하여야 하는바( 대법원 1998. 9. 22. 선고 98다2631 판결, 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5다62747 판결 등 참조),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는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사생활의 비밀을 엄수할 직무상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이는 주로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성폭력범죄의 수사를 담당하거나 수사에 관여하는 경찰관이 위와 같은 직무상 의무에 반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을 공개 또는 누설하였다면 국가는 그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원심은 제1심판결을 인용하여, 경찰관이 과실로 경찰서 출입기자들에게 원고 1의 구체적 피해사실 및 인적사항이 기재된 서류를 유출하여 언론에 위 원고 등의 성(姓)과 거주지역, 학년, 나이 등이 보도되도록 한 사실, 이 사건 성폭력범죄의 담당 경찰관이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이 동석한 가운데 위 원고의 신원 및 피해사실을 누설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로 인하여 원고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고, 거기에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없다.
4. 결 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