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급하게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
사실관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보조로 일하던 간호조무사 A씨는 2016년 12월 아침에 출근한 다음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은 뒤 사망했다. A씨의 사망 당시 나이는 26세였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청구를 했으나, 공단은 "업무상 사유에 의한 질병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거부했다. 이에 반발한 A씨의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유족은 A씨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게 된 이유는 사업주가 정식 출근 시간보다 30분 이른 8시 30분 출근을 지시했기 때문이라며 A씨는 비후성심근병증을 앓고 있었는데 지각에 대한 중압감 아래 계단을 황급히 올라가는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부담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됐다고 주장했다.
1심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행위로 인한 신체적 부담,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의 정도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수준이라며 오전 8시 30분이라는 출근 시각이 특별히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내용
서울고법 행정8부(재판장 김유진 부장판사)는 오전 8시 30분 조회에 불참하는 경우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기 때문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A씨에게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A씨가 출근하면서 상사의 질책을 면하기 위해 계단을 급히 올라가는 행위 또한 A씨의 사망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A씨는 사망 당일 출근하면서 지각으로 인한 상사의 질책을 면하기 위해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가다가 지병인 심장질환이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속하게 악화되거나 심실빈맥 등의 증상이 비로소 발현해 갑자기 사망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 등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서울고등법원 2019누66295)에서 원고패소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2020. 9. 11. 선고 2019누66295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사건】 2019누66295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원고, 항소인】 채A
【피고, 피항소인】 근로복지공단
【제1심판결】 서울행정법원 2019. 11. 14. 선고 2018구합89886 판결
【변론종결】 2020. 7. 17.
【판결선고】 2020. 9. 11.
【주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2018. 5. 17.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3.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이 법원이 이 부분에 설시할 이유는 제1심판결의 해당 부분 기재와 같으므로, 행정소송법 제8조 제2항,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나. 관련 법령, 다. 인정사실
이 법원이 위 각 부분에 설시할 이유는 제1심판결 제16쪽 2행(행수는 글상자를 제외하고 센다)의 “고용노동부고시 제2014-1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을 “고용노동부고시 제2017-1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으로 고쳐 쓰고, 별지 기재와 같이 관계법령을 추가하는 외에는 제1심판결의 해당 부분 기재와 같으므로, 행정소송법 제8조 제2항,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라. 판단
1)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7. 10. 24. 법률 제1493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 제1호에 정한 ‘업무상의 재해’라고 함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있는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이때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9두164 판결, 대법원 2017. 4. 28. 선고 2016두56134 판결 등 참조).
2) 앞서 본 사실관계와 갑 제3, 5, 6, 7, 15, 16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성E 교수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① 망인은 C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보조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업무 특성상 별도로 정해진 휴게시간 없이 하루 9시간 이상 업무시간(09:00경부터 18:30경까지)의 대부분을 진료실 내에 머무르며 근무하였고, 산부인과 진료보조 업무는 C병원 내에서도 기피대상일 정도로 그 업무의 강도도 높았다. 이와 같은 망인의 근무환경 및 업무내용을 고려하면, 망인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의 정도가 상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② 부검감정서(갑 제3호증)에 의하면, 망인이 앓고 있던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급성심장사가 망인의 사망 원인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비후성 심근병증의 연간 사망률은 약 1%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병의 사망률과 망인의 사망 당시 연령(26세)을 함께 고려하면, 망인이 전적으로 또는 주로 ‘지병인 비후성 심근병증의 자연적 진행’으로 사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③ 오히려 스트레스는 심장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심혈관계 질환이 돌연사의 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 소견이고, 이 법원의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성E 교수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따르면,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가 스트레스로 인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증상이 발현되거나 기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므로, 망인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누적된 스트레스가 망인의 지병인 비후성 심근병증 발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④ C병원은 평일 08:30경 아침조회를 실시하여 직원들의 출·퇴근 등 사항을 확인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였는데, 지각하여 조회시간에 불참하는 경우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 질책의 정도가 심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망인에게 큰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고, 망인은 사망 당일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빨리 3층에 도착하기 위하여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갔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망인이 출근하면서 상사의 질책을 면하기 위해 계단을 급히 올라가는 행위 또한 망인의 사망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⑤ 그밖에 이 사건에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이외에 달리 사망의 유인이 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는바, 망인이 이미 비후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었고, 이러한 망인의 지병이 사망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망인은 사망 당일 출근하면서 지각으로 인한 상사의 질책을 면하기 위하여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가다가 지병인 심장질환이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속하게 악화되거나 심실빈맥 등의 증상이 비로소 발현하여 갑자기 사망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 등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⑥ 구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2017. 12. 29. 고용노동부고시 제2017-1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고용노동부고시’라 한다)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 중 하나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근무시간이 64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망인의 사망일 이전 12주간 업무시간은 주당 평균 약 50시간 정도로 위와 같은 기준에 다소 미치지 못하기는 한다. 그러나 구 고용노동부고시는 위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서서히 증가한다고 봄으로써 그 관련성을 아예 부정하고 있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은 망인의 근무환경 및 업무내용, 망인이 겪었던 지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을 고려하면, 망인으로서는 업무시간에는 반영되지 않는 업무상의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망인의 업무시간이 위 기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사정만을 들어 망인의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이 달라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