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를 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더라도 그 지위는 형식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회사 경영을 총괄하며 급여를 지급받아왔다면 유족에게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산업재해보상법상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취지
사실관계
A씨의 배우자 B씨는 2018년 보수공사 현장에 출근해 굴삭기를 운전하며 업무를 하던 중, 굴삭기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해 사망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B씨는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는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는 건 맞지만 실제 대표자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내용
전주지법 행정1단독 이종문 부장판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를 말하는데, 해당 여부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지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지만,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그 지위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경영자가 따로 있다면 예외적으로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B씨가 근무하던 회사는 설립 당시 C씨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하다가 2017년 동서지간인 B씨를 대표이사로 등기한 것이고, 회사는 사실상 C씨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해 설립하고 설립한 이후부터 계속 경영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B씨는 대표로 등기된 이후에도 회사의 공사현장을 관리하면서 C씨에게 업무보고를 해왔다고 유족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전주지방법원 2019구단842)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그러면서 "현장 관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B씨는 매월 약 400만원씩 급여 명목으로 지급받았는데 회사가 월 급여액에서 근로소득세 및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공제한 후 지급했다"며 "이 같은 정황들을 봤을 때 B씨는 실제 경영자인 C씨로부터 구체적·개별적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은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전주지방법원 2020. 9. 9. 선고 2019구단842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사건】 2019구단842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원고】
A,
소송대리인 변호사 조근원, 소송복대리인 변호사 양효경
【피고】
근로복지공단
【변론종결】 2020. 7. 22.
【판결선고】 2020. 9. 9.
【주문】
1. 피고가 2018. 8. 28.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망 B(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의 배우자이다.
나. 망인은 2018. 6. 29. 14:30경 전북 임실군 C 부근에 있는 ‘D 유지보수공사’ 현장(이하 ‘이 사건 공사현장’이라고 한다)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던 중 굴삭기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였고, 이로 인하여 같은 날 17:00경 다발성 외상으로 사망하였다.
다. 원고는 망인의 배우자로서 2018. 8. 13.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를 하였으나, 피고는 2018. 8. 28. “망인은 유한회사 E의 대표이사로서 위 회사의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사고는 건설기계 운전면허가 없는 망인이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무면허운전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불법행위에 기인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하였다.
라. 원고는 2019. 1. 30.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2019. 5. 30. 원고의 재심사청구를 기각하는 재결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 24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에 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유한회사 E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기는 하나 위 회사의 실제 대표자 및 사업자는 F이다. 망인은 위 회사의 근로자로서 F의 지시에 따라 위 회사가 시공하는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하였으므로, 이 사건 사고로 인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 사건 사고가 망인의 무면허 운전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불법행위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피고가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련 법령
별지 관련 법령 기재와 같다.
다. 판단
1) 망인이 유한회사 E의 근로자인지 여부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동법상의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를 말한다고 규정하는 외에 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보험급여 대상자인 근로자는 오로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의하여 판가름나는 것이고, 그 해당 여부는 그 실질에 있어 그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지, 법인등기부에 임원으로 등기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것은 아니다.
한편,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대표이사로서의 지위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불과하여 회사의 대내적인 업무집행권이 없을 뿐 아니라 대외적인 업무집행에 있어서도 등기 명의에 기인하여 그 명의로 집행되는 것일 뿐 그 의사결정권자인 실제 경영자가 따로 있으며, 자신은 단지 실제 경영자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경영성과나 업무성적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수를 지급받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9두1440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의 경우 갑 제4, 6 내지 13, 15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 증인 F의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은 유한회사 E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기는 하나, 그 실질에 있어서는 실제 경영자인 F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수를 지급받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1) 유한회사 E은 설립 당시 F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하다가 2012. 11. 29.부터 F의 배우자, 2016. 8. 23.부터 F의 처남이 대표이사로 등기되었으며, 망인은 F와 동서지간으로서 2017. 9. 22.부터 위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다.
(2) 유한회사 E은 사실상 F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하여 설립된 회사로서 F가 설립 이후부터 사실상 경영해 왔고, 망인이 대표이사로 등기된 이후에도 인사, 자금관리, 세무, 회계 등 경영 전반에 있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3) 망인은 유한회사 E의 대표이사로 등기된 2017. 9. 22. 이전까지 F가 운영하는 유한회사 G에서 노무비 내역 및 작업일보, 현장경비 사용내역 등을 작성하여 F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고, 2017. 9. 22. 이후에도 유한회사 G 및 유한회사 E의 공사현장을 관리하면서 F에게 업무보고를 하였다.
(4) 망인은 유한회사 E에서 위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매월 약 400만 원씩을 급여 명목으로 지급받았고, 위 회사에서는 망인에 대한 월 급여액에서 근로소득세 및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공제한 후 지급하였다.
2) 망인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인지 여부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의하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하는바, 위 각 법령의 내용을 종합하면 근로자의 범죄행위와 업무 또는 다른 사정이 경합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사고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지와 범죄행위가 사고 발생에 기여한 정도를 살펴 업무와 무관한 범죄행위가 업무와 사고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단절시킬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업무상의 재해 해당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나) 갑 제8, 12, 21, 22, 24호증, 을 제3호증, 을 제4호증의 3, 4, 을 제6 내지 11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은 유한회사 E의 근로자로서 F의 지시에 따라 위 회사가 시공하는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것으로서 망인의 업무수행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이 사건 사고가 망인의 무면허운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위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① F는 “유한회사 E의 실제 경영자로서 필요한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망인에게 굴삭기로 현장 작업로 입구 부근의 벽면을 다지는 작업을 지시하여 이 사건 사고로 망인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등의 사실로 공소가 제기되어 전주지방법원에서 2020. 7. 8.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민사나 행정재판에 있어서는 형사재판의 사실인정에 구속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동일한 사실관계에 관하여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이 유죄로 인정한 사실은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므로 민사나 행정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들에 비추어 형사재판의 사실 판단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와 반대되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1두28240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와 함께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살펴보면, 망인은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F의 지시에 따른 작업을 하기 위하여 굴삭기를 운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와 달리 사실판단을 할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려우므로, 망인의 굴삭기 운전 행위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의 업무수행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② 망인은 건설기계 운전면허 없이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하였다. 그러나 무면허운전이라고 하여 곧바로 범죄행위로서 업무수행성을 부정할 수는 없고, 굴삭기를 운전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 현장의 상황과 작업 대상 등에 따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③ 망인은 저수지 둘레로 형성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 굴삭기를 운전해 가다가 도로를 벗어나 저수지 쪽의 토사 벽면 방향으로 이동한 후 흙 다지기 작업을 하던 중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경우 토사의 지반지지력이 약하여 굴삭기가 전복될 위험성은 운전면허의 보유 여부와 별개로 작업의 내용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④ 망인이 굴삭기를 운전하거나 저수지의 토사 벽면 쪽으로 이동한 것을 두고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의 업무수행을 벗어난 자의적이고 사적인 행위로 볼 만한 뚜렷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
3) 소결론
그렇다면, 망인은 유한회사 E의 근로자로서 업무를 수행하던 중 이 사건 사고로 사망하였고, 위 업무수행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와 다른 이유에서 피고가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