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사망한 의료사고 관련 소송에서 의료진의 책임이 일부 인정됐다면 병원측은 사실상 어떠한 진료비도 청구할 수 없다.
사실관계
A씨는 2009년 6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폐 절제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수술 직후 폐렴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겨져 기관절개술을 받았고 이후 사지마비, 신부전증, 뇌병변 장애 등을 앓았다. 그러다 2013년 12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A씨의 유족은 의료진이 폐결절 질환을 폐암으로 오진해 수술을 감행했고, 이후 감염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원고일부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다만 1심은 병원의 책임범위를 20%로, 2심은 30%로 제한했는데 최종적으로 30%로 확정됐다.
한편 병원 측도 유족들을 상대로 A씨에 대한 미납 진료비 9445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병원이 의료상 과실로 수술을 했고 이로 인해 합병증이 발생한 것이므로 진료비를 낼 수 없다고 맞섰다.
1심은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를 일정한 책임비율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병원 측이 자신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손해의 전보에 대해서는 진료비 지급을 구할 수 없지만, 자신의 책임비율을 넘어서는 부분은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며 책임비율인 20%를 제외한 나머지 7550여만원을 유족들이 지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병원 측의 책임비율이 30%로 상향된 것을 반영해 유족들의 지급금액을 6600여만원으로 낮췄다.
판결내용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의료진은 A씨에 대한 폐암 진단과 수술 등 일련의 진료행위 당시 진료계약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오히려 A씨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됐고, 또 손상 이후에는 그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악화방지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것뿐이어서 병원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다.
비록 이 사건 수술로 인한 A씨의 손해에 대한 병원의 책임범위가 30%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병원은 유족들에게 진료비채권 중 책임제한비율을 넘는 부분에 대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원심판결에는 이처럼 의료과실에 따른 진료비청구권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서울대병원이 A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의료비 청구 소송(대법원 2015다64551)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019. 4. 3. 선고 2015다64551 판결 의료비
【판시사항】
의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탓으로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되고, 그 후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경우, 환자에 대하여 수술비와 치료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및 이는 피해자의 체질적 소인이나 질병과 수술 등 치료의 위험도 등을 고려하여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여부(적극)
【참조조문】
민법 제390조, 제393조, 제681조, 제686조, 제763조
【참조판례】
대법원 1993. 7. 27. 선고 92다15031 판결(공1993하, 2381), 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1다28939 판결(공2016상, 13)
【원고, 상고인 겸 피상고인】
A병원
【피고, 피상고인 겸 상고인
1. 망 B의 소송수계인
가. C
나. D
다. E
2. D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9. 16. 선고 2014나68937 판결
【판결선고】 2019. 4. 3.
【주 문】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들의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의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탓으로 오히려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되었고, 또 손상 이후에는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것뿐이라면 의사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여 병원 측으로서는 환자에 대하여 수술비와 치료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피해자 측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공평의 원칙상 피해자의 체질적 소인이나 질병과 수술 등 치료의 위험도 등을 고려하여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1993. 7. 27. 선고 92다15031 판결, 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1다28939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망 B(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은 2009. 5. 31. 원고 병원에 입원하여 2009. 6. 2. 원고 병원 소속 흉부외과 전문의 F에 의하여 폐 우하엽과 우중엽을 절제하는 수술(이하'이 사건 수술'이라고 한다)을 받았다.
2) 망인은 이 사건 수술 직후인 2009. 6. 4. 새벽 무렵 폐 좌하엽에 폐렴이 발생하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2009. 6. 30. 가래 배출 악화로 기관절개술을 받았다. 그 후 사지 마비, 신부전증, 뇌병변 장애 등을 앓다가 2013. 12. 31. 원고 병원에서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3) 망인의 상속인으로는 처인 피고 C와 자녀인 피고 D, E이 있고, 피고 D는 망인이 입원할 당시 망인의 진료비 채무를 최고액 3,000만 원 범위 내에서 연대보증하였다.
원고 병원이 2009. 5. 31.부터 2013. 12. 31.까지 망인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진료비는 합계 94,456,000원이다(이하 '이 사건 진료비채권'이라고 한다).
4) 한편, 피고들은 원고 병원과 원고 병원 소속 의사인 G, F를 상대로 원고 병원의 의료진이 망인의 질환을 폐암으로 오진하여 이 사건 수술을 감행하였고, 수술 후 감염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망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합516667호로 손해배상청구의 소(이하 '관련 소송'이라고 한다)를 제기하였다.
5) 관련 소송의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3나2030422호)은 원고 병원 및 의료진이 CT검사 등을 통해 확인되는 망인의 폐결절을 폐암이라고 단정하고 확진에 필수적인 조직검사의 시행 없이 망인의 폐 상당 부분을 절제하는 이 사건 수술에 이른 것은 의료상과실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의사로서 설명의무도 위반하였으며, 이 사건 수술과 망인의 폐렴 합병증 등의 나쁜 결과 및 망인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있음이 인정되고,다만 이 사건 수술로 인한 망인의 손해에 대한 원고 병원 등의 책임범위를 30%로 제한한다고 판단하여 피고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위 판결은 그 대로 확정되었다.
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의 의료진은 망인에 대한 폐암 진단과 이 사건 수술을 위한 입원 및 이 사건 수술 등 일련의 진료행위 당시 진료계약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탓으로 오히려 망인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되었고, 또 손상 이후에는 그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것뿐이어서 원고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비록 이 사건 수술로 인한 망인의 손해에 대한 원고의 책임범위가 30%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진료비채권 중 위와 같은 원고의 책임제한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라. 그런데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원고는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진료비채권 중 이 사건 수술로 인한 망인의 손해에 대한 원고의 책임제한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의료과실에 따른 진료비청구권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원고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원고의 상고이유는 원고가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진료비채권 중 이 사건 수술로 인한 망인의 손해에 대한 원고의 책임제한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관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피고들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이상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상고이유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피고들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의 상고는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