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에게 은행 계좌를 양도한 사람이 피해자가 송금한 돈을 임의로 인출해 썼다면 피해자의 돈을 횡령한 것이므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사실관계
A씨는 2016년 12월 보이스피싱 범죄자로부터 계좌를 빌려주면 한 달에 2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양도했다.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은 피해자가 A씨 계좌로 600만원을 송금하자, A씨는 이 중 500만원을 자신의 다른 은행 계좌로 이체하고 생활비 등으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1·2심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사기 피해자의 돈이 A씨 명의의 계좌에 예치됐다고 하더라도 A씨와 피해자 사이에 위탁관계나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며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했어도 이러한 행위는 이미 성립한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포함된 것으로, 피해자에 대해 별도의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판결내용
인천지법 형사4부(재판장 양은상 부장판사)는 A씨가 자신 명의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사기범행에 이용되리라는 사정을 모르고 계좌를 양도했을 뿐이어서 사기의 공범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A씨가 자신의 계좌로 송금된 사기범행 피해자의 돈을 보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를 임의로 인출할 경우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대법원 2018도5255)했다.
파기환송 후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계좌가 사기범행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 여부 등을 심리한 다음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돼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 또는 이체한 경우, 계좌명의인은 그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해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하고, 계좌명의인이 영득할 의사로 돈을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다만 계좌명의인이 사기 범행의 공범이라면 돈을 인출하더라도 사기 범행의 실행행위일 뿐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어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A씨가 '체크카드를 빌려주면 돈을 주겠다는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문자를 보고 카드를 빌려줬을 뿐 이를 범죄행위에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봤을 때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될 것을 모르고 사기피해금 중 500만원을 인출해 개인적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인다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파기환송심(인천지방법원 2018노2707)에서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어떤 계좌에 계좌명의인과 송금인 사이에 법률관계 없이 자금이 송금된 경우 그 돈은 송금인에게 반환돼야 하므로 계좌명의인은 이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돼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 피해금을 송금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
인천지방법원 2020. 1. 7. 선고 2018노2707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횡령
【피고인】 A (7*-1)
【항소인】 쌍방
【검사】 이홍열(기소), 원선아(공판)
【변호인】 변호사 B(국선)
【원심판결】 인천지방법원 2017. 10. 26. 선고 2017고단6496 판결
【환송전당심판결】 인천지방법원 2018. 3. 23. 2017노4077 판결
【환송판결】 대법원 2018. 8. 1. 2018도5255 판결
【판결선고】 2020. 1. 7.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벌금 10,000,000원에 처한다.
피고인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00,000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이유】
1. 이 사건의 진행경과 및 이 법원의 심판범위
가.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에 대하여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는 한편, 횡령의 점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나.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에 대하여 피고인과 검사가 각 양형부당을 이유로, 무죄 부분에 대하여 검사가 법리오해를 이유로 항소하였으나, 환송 전 당심판결은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다. 환송 전 당심판결 전부에 대하여 검사가 법리오해를 이유로 상고하였는데, 대법원은 위 무죄 부분에 관한 환송 전 당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고, 위 무죄 부분과 위 유죄 부분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그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환송 전 당심판결 전부를 파기하여 이 법원에 환송하였다.
라. 따라서 이 법원의 심판범위는 위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라 원심판결의 유죄 부분과 무죄 부분 전부가 된다.
2.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양형부당)
원심이 선고한 형(벌금 500만 원)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1) 법리오해(무죄 부분)
피고인은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행과 관계 없이 단순히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범행을 한 것이어서 피고인의 횡령 범행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흡수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자 지위에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횡령의 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횡령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양형부당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3. 검사의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횡령의 점
피고인은 2016. 12. 1. ○○시 ○○동 이하 불상지에서 위 범죄사실 접근매체를 양도한 후 피해자 C가 성명불상자의 보이스피싱 범행에 속아 피고인 명의 위 우리은행 예금계좌로 송금한 6,000,000원을 보관하던 중, 임의로 5,000,000원을 피고인 명의 신협 예금계좌(D)로 이체한 후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재물을 횡령하였다.
나. 원심 및 환송 전 당심의 판단
사기 피해자의 자금이 피고인 명의의 계좌에 예치되어 있었다고 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서 어떠한 위탁관계나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그 후 사기범행에 이용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이미 성립한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포함된 것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본권(소유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려운바, 위와 같은 인출행위가 피해자에 대하여 별도의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위탁관계나 신임관계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이 부분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로 판단하였다.
다. 환송 후 당심의 판단
1) 관련 법리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검토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 C을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것이므로,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사기피해금 중 500만 원을 임의로 이체하여 사용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에 해당한다.
가) 피고인이 2016. 12. 1.경 성명불상자에게 피고인 명의 계좌와 연결된 접근매체인 체크카드를 양도한 이후 성명불상자의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속은 피해자 C이 위 계좌로 600만 원을 송금하였고,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위 사기피해금 중 500만 원을 피고인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여 임의로 사용하였다.
나)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주류회사 운영과 관련해 체크카드가 필요하니 이를 빌려 주면 임대료를 지급하겠다는 성명불상자의 메시지를 보고, 피고인 명의의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를 퀵서비스 기사를 통해 양도하였다. 당시 성명불상자가 위 계좌를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다)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에게 접근매체를 양도할 당시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그와 연결된 계좌가 이용되리라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거나 성명불상자와 공모 관계에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검사도 피고인을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의 공범으로 기소하지는 않았다.
3)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횡령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검사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검사의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은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범죄사실]
이 법원이 인정하는 범죄사실은 원심판결 제2면 제6행에 ‘1.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을 추가하고, 제2면 제11행에 ‘2. 횡령’의 제목으로 위 제3의 가항의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것 외에는 원심판결의 해당란 기재와 같다.
[증거의 요지]
1. 피고인의 일부 법정진술
1. 피고인에 대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1. C 작성 진정서 및 진술서
1. 거래내역, 계좌개설신청서 및 거래내역
1. 판시 전과 : 범죄경력등조회회보서, 수사보고(판결문 첨부)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 제6조 제3항 제1호(접근매체 양도의 점), 형법 제355조 제1항(횡령의 점), 각 벌금형 선택
1. 경합범처리
형법 제37조 후단, 제39조 제1항
1. 경합범가중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2호, 제50조
1. 노역장유치
형법 제70조 제1항, 제69조 제2항
‘[양형의 이유]
○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 : 벌금 3,000만 원 이하
○ 선고형의 결정 : 벌금 1,000만 원
[유리한 정상]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에 대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피고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에게 동종 범죄전력은 없다. 판결이 확정된 사기죄 등과 이 사건 각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야 한다.
[불리한 정상]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에게 자신 명의의 계좌와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하고, 성명불상자의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속은 피해자가 위 계좌에 입금한 사기피해금 중 일부를 이체·사용하여 횡령한 것으로,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 이 사건 횡령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 피고인은 사기죄 등으로 여러 차례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위와 같은 사정에다가 피고인의 성행과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전과 등 이 사건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양형사유들을 종합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